[서광원의 자연과 삶]〈1〉잘 봐야 잘 잡는다… 눈의 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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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치타는 네 다리를 가진 동물 중 가장 빠르다. 3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가속할 정도니 속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녀석들이 지구에 출현한 건 지금으로부터 200만∼300만 년 전. 천하의 사자들이 덩치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없는 가젤을 타깃으로 하면서부터다. 가젤 사냥에 전문화한 것이다. 물론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빠른 가젤을 잡기 위해서는 모든 걸 바꿔야 했기에 머리 크기는 물론 턱과 이빨, 그리고 발톱까지 무게와 크기를 줄였다. 반면 심장과 호흡기를 키워 호흡량을 늘렸다. 이렇게 몸 전체를 개조하다시피 한 덕분에 순간 최대 속도 시속 120km 이상을 구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화 과정에서 치타가 건드리지 않은 곳이 있었다. 눈 크기다. 빨리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쫓아야 할 목표를 정확히, 제대로 보는 게 그 이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치타만이 아니다. 속도를 중시하는 사냥꾼들의 진화 과정을 보면 다른 건 줄여도 눈 크기만은 줄이지 않는 편이다. 살아가기 힘든 곳에서 사는 생명체일수록 눈을 중시한다. 숲의 밤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든 올빼미는 귀도 크지만 눈 또한 크다. 어둠 속을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동자 지름이 보통 8mm쯤인데 녀석들은 13mm나 된다. 눈의 무게가 몸무게의 30%나 되는 녀석도 있으니 눈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셈이다. 이 덕분에 녀석들의 밤눈은 사람보다 100배쯤 뛰어나다. 햇빛이 거의 없는 심해에 사는 대왕오징어도 비슷한데, 사방이 캄캄한 이런 곳에는 눈이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다.

생명의 역사에서 눈은 언제나 진화의 아이콘이었다. 좋은 눈을 가질수록 생존의 우위를 누렸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맬컴 매카이버 연구팀이 수많은 화석의 눈 크기를 측정해 보니 최초로 육지에 상륙한 양서류는 물고기 시절보다 눈이 세 배나 컸다. 또 육지로 올라와서 눈이 커진 게 아니라 눈이 좋은 생명체들이 육지의 먹잇감을 보고 올라왔고 계속 눈을 키웠다. 눈이 좋은 녀석들이 신천지를 발견했던 셈이다.

인류 역시 몸에 비해 눈이 큰 편이다. 뇌의 3분의 1 이상을 시각중추에 할애하고 있다. 오늘의 인류가 되기까지 눈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의미다. 야구에서 타격 페이스가 갑자기 떨어지는 선수들은 대개 볼을 보는 선구안이 먼저 나빠진다. 좋지 않은 볼에 방망이가 나가니 잘 맞을 리 없다. 격투기 선수들은 얼굴에 펀치가 날아들어도 눈을 감지 않는다. 감으면 반격할 기회가 물 건너 가 버리니 주먹이 날아와도 눈을 뜨는 훈련을 한다.

세상 사는 게 갈수록 힘들다 보니 현실을 외면하고 눈을 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잠깐은 잊을 수 있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무엇보다 해결의 실마리가 현실 속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눈을 뜨고 있어야 보는 눈이 생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치타#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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