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ID의 조속한 실현을 대체할 플랜B는 없다[윤상호 전문기자의 국방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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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태블릿PC를 이용해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쏜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 사진 출처 노동신문
10일 태블릿PC를 이용해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쏜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 사진 출처 노동신문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미국 뉴욕 변두리 사업가에서 부동산 재벌로, 다시 세계 최고 권력자로 변신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거래와 협상의 달인’이다. 그는 32년 전에 쓴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거래를 유리하게 성사시키려면 상대를 설득 회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허세와 과장도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내 거래 조건을 관철시키려면 거짓말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테크닉’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세계관에서 모든 거래는 승패가 극명히 갈리는 ‘게임’이다. 평생 패배를 혐오하며 승승장구한 그는 ‘협상의 귀재’ ‘냉혹한 승부사’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하지만 2년이 다 돼 가는 북-미 비핵화 게임의 득실을 따져 보면 그런 수식어가 무색해진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가진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판문점 회동, 잇단 친서 교환 등 북-미 정상의 ‘스킨십’을 치적으로 내세운다. 3대에 걸쳐 미국을 뼛속까지 증오하는 적성국 수장을 ‘친구(friend)’로 만든 것은 역대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승리’라는 자화자찬이다.

그러나 내용 면에선 사실상 ‘완패’라고 필자는 본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비핵화 협상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실체적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직접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확충한 신형 잠수함은 ‘궁극의 핵무기’다. 물속 깊은 곳에서 발사되는 SLBM은 포착과 요격이 거의 불가능하다. 2017년 6차 핵실험에 사용한 수소폭탄급 핵탄두를 실은 SLBM 한 발이면 서울을 절멸시켜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시험 발사를 참관한 KN-23 등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 2종과 신형 방사포도 긴급 위협으로 부상했다. 이 무기들은 저고도 변칙 기동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한미 감시·요격망을 요리조리 피할 수 있다. 개전 초 이들 무기에 핵·생화학탄두를 실어 주한미군 기지와 증원전력이 들어오는 항구와 공항을 동시 다발로 타격하면 한미 연합군은 뇌사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무기고 증강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영변과 강선 등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에서는 지금도 고농축우라늄이 대량 생산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2, 3년 내 100기가 넘는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이는 5대 핵보유국인 영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주한미군과 미 인도태평양사령부도 비핵화 협상 이후 북한의 위협은 변한 게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밖에도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을 핵무력을 증가시키는 ‘시간벌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포기에 회의적 견해를 피력한 정보수장을 ‘트윗 경질’하고, 북한의 잇단 도발도 별것 아니라면서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는 북한을 편드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내년 11월 재선을 겨냥한 ‘고도의 계산’으로 볼 여지도 있다. 대선 직전에 김 위원장의 백악관 초청이라는 초대형 호재를 끌어내려는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북한과 ‘강대강’ 대결로 돌아가면 외교안보의 최대 성과를 스스로 허무는 꼴이어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만 아니면 웬만한 도발은 묵인하기로 작정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속내가 무엇이든지 이런 우려가 나올수록 미국의 북-미 협상 목표에 대한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북-미 핵게임의 종착점이 ‘핵동결’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 것이 그 사례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경고도 흘려듣기 힘들다.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일부 핵 전문가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동결 합의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로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대안이다. 북한의 핵을 용인하는 순간 비핵화 협상은 핵군축 협상으로 변질되고,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인질’로 영속될 수밖에 없다. ‘완전한 비핵화(CVID)’의 조속한 실현 이외에 어떠한 ‘플랜B’도 없다는 점을 한미가 다시 한번 확고히 공유해야 할 때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핵동결 등 최악의 시나리오로 귀결돼 “이 지경이 되도록 우린 뭘 했느냐”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
#북한 비핵화#cvid#김정은#미사일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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