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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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10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 연구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검찰 간부를 좌천시켜 지방으로 내쫓는 이런 일은 우리 검찰사에서 전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10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 연구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검찰 간부를 좌천시켜 지방으로 내쫓는 이런 일은 우리 검찰사에서 전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태훈 논설위원
이태훈 논설위원
《“검찰 개혁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 보장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검찰 직무의 독립성, 조직의 안정성, 인사의 예측 가능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특히 인사 예측 가능성의 핵심은 검사 인사가 공정하고 능력과 조직 기여도를 따라 이뤄져야 합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인사는 이런 것을 모두 무시해 검찰 중립성을 오히려 해친 것입니다.” 원로 헌법학자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최근 이뤄진 검찰 인사를 이같이 평가했다. ‘검찰 수사 무력화’ ‘검찰 장악’ 논란 속에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한 균형 있는 인사’라는 반박이 여권에서 나온 이번 인사에 대해 허 교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상호 견제·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헌법상 삼권분립의 원리가 무시된 인사”라고 비판했다. 독일 뮌헨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연세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정년퇴직한 허 교수는 한국 헌법학 이론의 기틀을 다진 대표적인 헌법학자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검찰총장은 범죄 수사를 총지휘하는 수사권의 정점이다. 그 직함이 헌법 89조에 찍혀 있고, 검찰청법에도 검찰 총수로서의 권한이 부여돼 있다. 검찰을 지휘·감독하는 검찰총장으로서 검사 인사에 대해 발언권이 없으면 그게 말이 되겠나. 당연히 검찰 지휘감독권의 범위 내에서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절차가 보장되지 못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장관의 호출에 응하지 않은 것을 두고 추 장관이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했는데….

“검찰인사위원회 30분 전에 가서 검찰총장이 의견을 진술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렇게 인사를 하겠다’ 하고 보여주는 정도밖에 더 되나. 검찰총장은 그걸 다 예상하고 안 간 것이다. 더군다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은 명령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견제·균형의 관계다.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법무부 장관은 그 일환으로서 검사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나. 검찰총장은 검찰을 총괄 지휘·감독하는 사람으로서 검찰 인사를 하는 데 자기 의견을 표현하면서 장관의 구상이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게 ‘기관 내 견제·균형 장치’다. 그런데 그걸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법무부 장관이 명령하면 검찰총장은 따라야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다.”

―정부 직제로 보면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보다 서열이 높은데, 명령복종 관계가 아니란 말인가.

“과거 19세기, 20세기적인 ‘특별권력관계 이론’에 의하면 공무원 관계, 교사 학생 관계, 군인 관계, 교도소와 수형자 관계 등에서 나타나는 특별권력관계의 본질을 ‘명령복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특별권력관계라는 말 자체가 잘 사용되지 않는다. 공직 관계도 요즘은 특수한 신분관계로 이해하지, 명령복종이 본질인 관계로 보지 않는다. 삼권분립은 입법권, 집행권, 사법권을 각각 나눠서 다른 기관에 맡기고 서로가 견제·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것을 ‘기관 간의 견제·균형’이라고 하는데, 삼권분립의 내용 속에는 ‘기관 간의 견제’만 있는 게 아니라 ‘기관 내의 견제’도 있다.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려면 국무회의의 심의를 받도록 한다든가,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를 하려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든가 이게 다 ‘기관 내의 견제·균형’ 메커니즘이다.”

―법무부 장관이 검사 인사를 제청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한 검찰청법의 본래 취지는 무엇인가.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지휘·감독한다고 하는 규정과 법무부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하려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으라는 얘기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에 견제·균형을 이루게 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법무부 장관이 인사를 강행하는 것은 그런 견제·균형 장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을 대통령에게 제청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한다는 검찰청법 조항(제34조 1항)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1월 개정됐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인사를 두고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검찰 인사에 외풍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론화된 결과였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하는 도중에 수사 지휘 라인을 모두 교체한 데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 등이 모두 청와대에서 생긴 일 아닌가. 청와대가 수사 대상인데 자기들을 수사한 검찰 간부를 좌천시켜서 지방으로 내쫓는 이런 일은 우리 검찰사에서 전례가 없을 거다. 이번 인사는 어떻게 보면 ‘탈법적인 수사 지휘’에 해당할 수 있다. 검찰청법에 보면 개별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게 돼 있는데, 두 사건 수사에 대해 검찰총장을 패싱해 버리고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들을 좌천시켜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꿔버리면 그것이 수사 지휘 아닌가.”

―헌법 관점에서 대통령의 검찰 인사권을 본다면….

“검찰이 행정기관이긴 하지만 준사법기관으로 범죄 수사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선 ‘수사상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헌법상 대통령의 공무원 인사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르도록 정했기 때문에 자의적인 인사는 헌법정신에 반한다. 법률은 상식의 규범적 표현인데 인사가 공정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여권과 법무부는 이 모든 걸 검찰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에 검찰이 권력의 시녀 노릇을 오랫동안 한 것이 사실이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다. 검찰은 대통령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민의 생활에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범죄를 다스리는 게 검찰 아니냐. 권력과는 거리를 둬야 된다. 그런데 이제 막상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려고 하니까 쳐내려고 이런 인사를 하는 것은 검찰을 다시 정치에 예속화하려는 시도다. 이건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해온 검찰 개혁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이 헌법상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는데….

“검찰총장은 헌법에 근거를 둔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공수처장이라고 하는 것은 헌법에 근거도 없는데 검찰총장 위에 올라가서 사건을 보내라 말라 지휘한다는 것이 말이 되겠나. 검찰총장의 상왕(上王)을 하나 만드는데 어떻게 헌법에 근거도 없이 만들 수 있나. 위헌적인 기관이다.”

―현 정부가 국정운영 과정에서 법률이 아닌 시행령 개정 등에 의존한다는 지적이 있다.

“행정입법이 남용되고 있는 게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다. 부동산 대책도 행정입법으로 많이 하고, 자율형사립고 일괄 전환 문제도 그렇다. 행정입법은 반드시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헌법 37조 2항에 적혀 있다. 이걸 헌법학에서는 ‘법률 유보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법률의 근거가 없거나 법률에서 위임한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행정입법을 하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다.”

―범여권이 공수처법과 선거법 통과를 강행 처리한 것에 자유한국당이 반발하고 있지만 결국 다수결 원칙이 관철된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만장일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다수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수결 원칙은 4가지 전제조건이 성립될 때만 옳다. 첫째,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합의가 있어야 하고, 둘째 내용에 대한 충분한 토의를 해야 하며, 셋째 참여자들이 평등한 지위를 가져야 하고, 넷째 다수 관계의 가변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는 ‘내가 소수 입장이지만 언젠가는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 소수는 다수의 일에 절대 복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에서 적용한 다수결 원칙은 그 요건을 다 배제해 버리고 무리하게 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에서 말하는 다수결 원칙의 근본 원리에 위배된다.”

허 교수는 이번 인사로 큰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검찰총장과 검사들이 공직자로서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 당부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윤 총장은 팔, 다리 다 잘려 나가고 외롭겠지만 청와대의 칼끝이 자기를 향하는 이런 때일수록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지금 시작한 일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검찰총장으로서 기여하는 것이다. 검찰청법에 임기 2년이 보장돼 있다. 검찰총장을 임기 2년이 되기 전에 탄핵 외에 쫓아내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검찰 지휘라인에 있던 좌천당한 검사들도 의기소침하지 말고 자기 할 일을 다하는 것이 국가에 기여하는 공직자로서의 자세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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