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이자스민’ 나오는 당이 이긴다[여의도 25시/최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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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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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시절(왼쪽 사진)과 11일 정의당 입당식에 참석한 이자스민 전 의원. 동아일보DB·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2년 3월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시절(왼쪽 사진)과 11일 정의당 입당식에 참석한 이자스민 전 의원. 동아일보DB·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최우열 정치부 기자
최우열 정치부 기자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11일 정의당에 입당한 이자스민 전 의원이 화제다. 총선을 앞두고 황교안 대표가 박찬주 전 대장을 ‘귀한 인재’라며 모시려고 공을 들이는 동안, 7년 전 영입했던 ‘다문화 1호’ 국회의원 이자스민이 탈당계를 낸 장면이 너무도 대비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민주당이 먼저 이런 생각(이자스민 영입)을 하지 못한 것은 참 안타깝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자스민을 공천한 2012년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의 총선 공천이 새삼 주목받았다.

필리핀 출신 귀화 여성 이자스민이 의정 활동을 엄청나게 잘했고 한국당에 꼭 필요한 인재였는데 정의당에 빼앗겼다는 건 아니다. 이자스민 개인이 아니라 그를 발굴하고 공천한 과정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크기에, 21대 총선을 준비하는 여야 모두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자스민은 과연 어떻게 국회에 입성했을까. 당시 공천에 관여한 핵심 인사들에게 물어보니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시사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이자스민은 19대 총선 2년 전인 2010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해 한나라당(한국당 전신)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할 뻔했다. 당시 서울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은 베트남 출신 신부와 이주노동자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다문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이자스민을 공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치열한 공천 경쟁 탓에 최종 출마는 좌절됐다. 그래도 당시 한국당 서울시당 위원장인 권영세 전 의원은 이자스민을 만나 “이번엔 아쉽게 됐지만, 다음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니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당시는 이자스민을 알린 영화 ‘완득이’가 개봉(2011년)도 하기 전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의아할 정도지만 당시 한나라당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읽고 대비하는 시도를 했다는 증거로는 충분하다.

2012년 총선 땐 이자스민이 포함된 ‘비례대표 의원 명단’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공교롭게도 2년 전 이자스민을 만났던 권 전 의원도 총선 땐 당 사무총장을 맡아 공천을 진두지휘하고 있었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실 쪽에서 픽업이 된 걸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비대위원장실 및 핵심 참모들이 말하는 비례대표 명단 작성 과정은 반복된 ‘기획과 토론’이었다고 한다. ‘독재자의 딸’ ‘레이저 눈빛’ ‘불통’ 등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고착화된 이미지를 ‘따뜻한 여성 지도자’로 바꾸기 위한 기획이 있었고, 이를 위해 여성과 소수자 탈북민 경제민주화 문제 등을 어떻게 선거에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는 것. 이 과정에서 ‘나영이 주치의’ 신의진(연세대 의대 교수),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탈북 여성박사 1호’ 이애란, 김일성대 교수 출신 조명철, 이자스민 등이 거론됐고 그중 일부가 비례대표 순번에 배치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인재가 있어도 ‘망할 것 같은 집’엔 오지 않기 때문에 ‘될성부른 집’으로 바꾸는 게 우선. 2011년 12월 한나라당 쇄신파 남경필 권영진 김세연 등 7명은 “이대로 가면 총선에서 폭망한다”면서 국회 회의실에 박 위원장을 불러 앉혔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 출범을 약속하면서 “재창당을 뛰어넘는 개혁”과 “한나라당을 뼛속까지 바꾸겠다”고 했다. 그 후 지금 봐도 한나라당엔 이질감이 있는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이 비대위원으로 들어왔고, 당 강령엔 ‘경제민주화’가 삽입됐다. 당명은 새누리당으로, 당색은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을 주도한 이는 “뼛속까지 바꾸니 안 오려던 사람도 관심을 가졌다. 통합이든 영입이든 잘되려면 자기 혁신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자기 혁신과 한 박자 빠른 사회 흐름 읽기, 끊임없는 기획과 토론 등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되는 새누리당의 19대 총선은 ‘폭망’ 예상을 뒤집고 152석 과반 확보로 귀결됐다. 박찬주 전 대장의 ‘삼청교육대 발언’ 논란 직후 만난 한국당 황 대표는 “좋은 인재를 모시려고 해도 잘 오지 않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민주당 역시 인재 영입이나 당의 혁신 면에서 아직 뚜렷한 구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자스민 영입이 주는 교훈은 지금도 여야 모두에 유효해 보인다.
 
최우열 정치부 기자 dnsp@donga.com
#자유한국당#정의당#이자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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