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승선의 기억[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5〉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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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선원이 되기 위해 해양대 4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다음 처음으로 외국에서 승선을 할 때였다. 백지 위에 하나씩 승선의 추억을 쌓아가는 첫 그림이었으니 그 장면이 생생하게 남는 것은 당연하다. 1982년 부산에서 2주간의 승선 교육을 받고 배선을 받았다. 승선할 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얀부와 페르시아만의 라스타누라를 왕복하는 유조선이었다.

승선을 하기 위해 두바이로 가야 하는데 경유지인 나리타공항에서 8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갑판장과 기관부 오일러가 같이 동승하는데 “3항사님, 나중에 1등 항해사가 되면 우리 잘 봐주이소. 본과 나왔으니 이제 3년만 지나면 1항사가 되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본과라는 말이 궁금했다. 1945년 한국해양대가 갓 설립된 시절에는 예과가 있고 본과가 있었다. 예과를 거쳐서 본과에 편입했다. 전수과 및 전문학교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구별하여 정통 해양대 4년제를 나온 사람은 해양대 본과 출신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KLM네덜란드항공을 탔는데, 금발의 기내 승무원들이 있었다. 나에게 미소를 보낸 그녀에게 말을 걸고 회사 주소를 적어 주었다. 물론 연락은 받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그런 호기로운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 미소가 업무상의 친절함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바이에서 우리는 작은 호텔로 들어갔다. 배가 도착하지 않아 이틀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흘 만에 배로 가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차를 탔는데 오랜 시간을 달렸다. 그리고 통선을 타고 내가 탈 배에 접근하는데 덩치가 엄청나게 컸다. 현측에는 산코라인이라는 흰색 글자가 적혀 있고 굴뚝에는 붉은색 동그라미 3개가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처음 마주하게 된 산코라인과의 인연은 10년 이상 지속되었다. 선박의 이름은 ‘요크의 페넬로페(Penelope of York)’였다.

중간 기항지를 제공한 곳은 바로 코르파칸이라는 곳이다. 페르시아만의 입구에 있는데, 아랍에미리트의 항구로, 자유경제체제가 도입돼 비교적 자유로운 무역이 가능한 곳이다. 선박들은 페르시아만에 입항하기 전 이곳에서 선박연료유를 공급받고 선원 교대를 하는 등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대학 2년 선배님이 가욋일을 시키자 내가 몇 번인가 “내 일이 아니다(not my job)”라고 했다. 어느 날 그 선배가 나를 불렀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후배 3항사가 이제 일을 막 시작하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조용히 충고를 해주었다.

안경을 쓰게 된 것도 이 배에서였다. 나는 눈이 좋았다. 해양대생은 눈이 나쁘면 입학이 안 된다. 선장이 매시 15분 간격으로 태양 관측으로 선박 위치를 측량하라고 지시했다. 태양을 바로 거울로 보면 안 되고 그늘진 유리를 중간에 끼워야 한다. 정각에 맞추기 위해 급하게 하느라 그늘진 유리를 내리지 않고 밝은 태양을 바로 봤고, 그 탓에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선장에게 훌륭한 3등 항해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경이 영광의 훈장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배우면서 나는 선장으로 향하는 길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바다와 배#승선#선원#해양대#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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