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스스로 푸르게 하라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17-12-26 03:00수정 2017-12-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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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사철나무
올곧음을 상징하는 사철나무는 추운 겨울에 열매를 터뜨리고 다홍색 씨를 내보인다.
노박덩굴과의 늘푸른떨기나무 사철나무의 이름은 잎이 늘 푸르다는 뜻이다. 사철나무의 한자 이름은 ‘겨울에도 푸르다’는 동청(冬靑)이다. 사철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만년지(萬年枝)다. 그러나 중국 송나라 휘종이 ‘만년지 위에 태평작(萬年枝上太平雀)’이란 제목으로 시험문제를 냈지만 무슨 나무인지 몰라 합격자가 없었다. 조선의 정조도 만년지라는 제목의 시를 짓게 한 적이 있었다. 이때 송지렴이 수석으로 합격했다. 만년지는 ‘세종실록’에도 등장하고 있으니, 조선 초기부터 동청과 함께 사철나무의 이름으로 가끔 사용했다.

사철나무는 요즘 조경수로 즐겨 심기 때문에 주위에서 자주 만날 수 있지만 나이가 많은 사철나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종종 조선시대 양반집에서 나이 많은 사철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 이유는 양반들이 사철나무를 즐겨 심었기 때문이다. 양반가의 사철나무는 외간 남자와 바로 얼굴을 대할 수 없도록 만든 문병(門屛), 즉 문의 병풍으로 심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작품에서도 사철나무를 만날 수 있다. 예컨대 심수경의 시에도 ‘열 그루 사철나무 정자를 에워싸니(十樹冬靑擁一亭)’처럼 사철나무가 등장한다. 허목의 ‘기언(記言)’ 가운데 ‘장암수석기(藏巖水石記)’에서는 줄사철나무가 둘러싼 바위, 즉 ‘장암(藏巖)’을 소개하고 있다. 더욱이 허목은 ‘덕유산기(德裕山記)’에서 향기가 나는 사철나무를 언급하고 있다. 전북 진안 마이산 줄사철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보기 드문 사철나무 천연기념물이다.

나는 사철나무의 늘 푸른 잎과 더불어 흰색 노랑을 섞은 황백색의 꽃과 네 개로 갈라지는 껍질 속의 주황색 씨앗을 무척 좋아한다. 특히 사철나무의 열매는 겨울 햇살에 더욱 빛난다. 사철나무는 소금기가 많은 바닷가는 물론이고 습지나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사철나무의 이러한 특성은 ‘늘 푸른 나무’로 살아가는 중요한 바탕이자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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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나무가 스스로 푸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늘 파란 하늘의 기운을 받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란 하늘의 기운을 받으면 자신의 맑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맑은 모습은 좋은 기운을 많이 축적할 때 드러난다.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야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 이 같은 공부를 ‘호연지기(浩然之氣)’라 부른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노박덩굴과#늘푸른떨기나무#사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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