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모바일 칼럼] 한자교육 필요없다? 간판에 한자 병기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8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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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일본인 교수 부부가 한국에 오셨습니다. 한국문화도 소개할 겸 1박2일 국내 관광을 동행해 안내해드렸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은 교수인 남편이었고 부인도 이미 여러 차례 한국방문을 하신 경험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나이는 60대 초반으로 금슬이 좋으셔서(?) 자주 해외여행을 다니시는 분들이었습니다.

토요일에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부인이 한국에 올 때마다 명동에서 만나는 노점상 할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20여 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인연을 맺었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한자리에서 양말을 파는 할머니로 한국에 올 때마다 일부러 찾아가서 인사를 나눈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양말을 몇 켤레 사다가 옆에 있던 남편의 통역으로 할머니의 사연을 듣게 되어 감동하고 이후 죽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살림에도 노점을 하면서 세 아이를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는 할머니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말이지요.

지금 서울에는 부산소녀상 건립문제로 본국으로 소환된 주한일본대사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공석으로 있는 등 한일관계가 악화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이렇게 밑바닥에서 흐르는 사람과 사람간의 스킨십이야말로 한일관계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부가 돌아가기 전날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부인은 마치 제가 무슨 큰 힘이라도 행사해줄 수 있다면 해달라는 표정으로 사정하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소한 간판 만에라도 한자(漢字)를 병기해줄 수는 없나요? 한글을 모르는 관광객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지요. 제 주변에도 한국에 관광을 가고 싶지만 간판을 읽지 못하고 관광 안내서도 일본어는 별로 없고 있다고 하면 영어인데 한글안내서에 한자를 병기하면 관광객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아요.”

부인의 말을 들으면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일본 중국은 한자문화권입니다. 우리 어휘의 70%가 한자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일본어공부를 시작한 저의 입장에서도 공부하면 할수록 같은 한자 단어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란 적이 많았습니다. 발음도 거의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한자를 공부할 때 중국어 일본어를 같이 배우면 얼마나 편하게 배울 수 있었을까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을 여행할 때도 한자 덕을 톡톡히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소 한글 전용을 주장하시는 분들을 한글 사랑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한글사용을 주장하지만 보다 넓은 국제적 시야로 본다면 그게 결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워야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것처럼 한자문화권에 속한 우리는 한자를 국제어로 생각해서 한자를 알아야 이웃나라들과 보다 빠른 의사소통을 하고 단단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관광을 새로운 서비스 산업으로 키워서 관광대국 한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글 전용 간판만을 고집할 경우 과연 우리에게 해가될지 득이 될지는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1800자만 제대로 읽고 쓴다 해도 한자문화권과 기본적인 교류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공교육에서 한자를 등한시하니 사교육에서 맡을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교육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는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한자를 선택과목으로 규정한 교육부 고시가 합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모든 것을 헌재에 맡기는 ‘기승전 사법화’에도 문제가 많지만 아무리 헌재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 해도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힘을 잃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든, 중국의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한국관광이 휘청거리고 있는 요즘, 간판에라도 한자를 병기해서 이참에 일본 관광객들에게 좀더 편한 관광환경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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