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의 모바일 칼럼]4차 산업혁명은 ‘빨리 포기하기’ 경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3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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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4차 산업혁명 선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일 서울 꿈이룸학교에서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은 
‘4차 산업혁명 선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문재인 “4차 산업혁명 선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일 서울 꿈이룸학교에서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은 ‘4차 산업혁명 선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제 정부는 다양해진 서비스를 가장 효과적이고 개별화된 방식으로 시민사회에 제공하는 능력에 의해 평가받는 공공서비스센터로 그 역할이 바뀌게 될 것이다.'

탄핵소추로 직무정지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읽었다는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에 나오는 정부의 역할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시민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 박 대통령이 이 대목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하고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7'에 참석하는 등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식물 대통령'부터 미래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대선주자들까지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던지고 있지만 누가 이 물결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알기 어렵다.

구글에는 'X'라는 비밀 연구개발기구가 있다. 원래 '구글X'로 출발했지만 2015년 10월부터 사명을 X로 바꿨다.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실체를 알기 어렵다. 불확실하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잘 활용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길이라고 본 것이다.

X에서 다루는 프로젝트는 3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구글이 불확실성을 제어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이다.

첫째 조건은 '거대한 문제여야 한다' 이다. 전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하면서 기본적인 문제라야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암 사망자' 같은 화두가 그렇다.

두 번째 조건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문제를 빠른 속도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한 기술 개발에 30년이 걸린다면 구글의 과제에서 배제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30년 뒤에는 낡은 제품이 돼버린다.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물리와 과학의 기본 공식을 무시하지 않는 프로젝트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백 투더 퓨처'에 나오는 물 위를 나는 스케이트보드는 물리의 기본전제를 무너뜨리는 공상이어서 X의 연구 대상이 되지 못했다.

X의 평가팀은 이런 3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정밀하게 검증한다. 중요한 것은 이 타당성 검증의 목적은 빨리 포기할 프로젝트를 가려내는 것이다. 쉬운 문제를 가지고 힘 빼지 말고 가장 어렵고 무거운 장애물을 확인하라. 그리고 안 될 일이면 빨리 포기하라. 구글에서는 이게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가. 프로젝트가 성공할 때까지 총력전을 벌이며 돈을 쓴다. 포기를 실패라고 생각해서 중단없이 전진하다가 공멸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은 장엄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비효율을 키우고 재앙이 될 수 있다.

한국에도 X가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2015년부터 시작한 X프로젝트.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고 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연구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결국 정부 돈을 따내는 사업이다. 정부 눈높이를 맞출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 정부는 클라우스 슈밥이 말한 '공공서비스센터'가 아니라 자원을 배분하는 최고 권력자다.

한국판 X에서는 분노기억 동물모델 제작을 통한 분노기억 삭제물질 탐색, 단백질을 이용한 상아질 재생기술 개발, 온도에 따라 변하는 직물제조기술 개발, 머신러닝을 이용한 뇌 노화 예측 시스템 개발 등의 과제가 선정됐다.

모두 의미 있는 프로젝트다. 연구개발에 성공할 경우 관련 분야에서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구글의 X에 비해 인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대한 과제인지는 의문이다.

이왕 시작했다면 최대한 빠른 속도로 프로젝트별 타당성 검증을 해야 할 것이다. 검증 후 사업성이 없거나 성공하기 어렵다면 빨리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한 곳에 연구인력과 재원을 집중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세상에서는 타깃을 잘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는 '빨리 포기하기' 경주에서 이겨야 한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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