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70>새로운 세계로 질주하는 파란 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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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마르크, ‘푸른 말1’.
프란츠 마르크, ‘푸른 말1’.
프란츠 마르크(1880∼1916)는 정신이 넉넉한 시대를 열망했던 독일 화가였습니다. 동시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넘어 위대한 정신이 깃든 미술을 선사하려 했지요.

1911년 화가는 동료, 바실리 칸딘스키와 의기투합했습니다. 알프스 산이 보이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미술단체 결성을 논의했지요. 파란색 애호가였던 두 사람은 각각 말과 기수를 좋아했어요. 미술단체 명칭이 청기사인 이유입니다. 독일 뮌헨에서 첫 전시로 공식 활동을 시작한 청기사 그룹은 이듬해 두 차례 단체전을 더 가진 후 해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시와 출간을 지속하며 미술에서 물질주의 극복의 가능성을 찾았던 청기사 그룹의 미술사적 의의는 큽니다.

화가는 1908년 무렵 동물 그림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을 신비롭고, 순수한 존재로 여겼거든요. 자연과 생명의 살아있는 얼굴로 간주했어요. 원근법을 해체하고, 선과 색에서 해방된 형태로 동물 겉모습이 아닌 순수한 존재감을 표현하려 했지요. 특히 강렬한 색채로 미술을 견인하고자 했습니다.

과학과 실험보다 감성과 경험을 기준으로 색채를 선택했던 프랑스 인상주의 미술가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색채 연구에 몰두했던 화가는 색채마다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했어요. 이를테면 파란색은 이상적 정신세계를 뜻합니다. 빨간색은 폭력적 물질세계를 은유합니다. 노란색은 관능과 환희의 세상을 나타냅니다. 화가는 그림 속 세계의 과잉과 결핍을 표현하고 조절하려 색채를 적절히 배합하고, 조화롭게 배치하려 애썼지요.

미술가는 ‘파란 말’ 연작으로 개인뿐 아니라 청기사 그룹의 예술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푸르스름한 안개에 둘러싸인 자신의 거처를 ‘파란 나라’라 불렀던 화가는 파란 말을 반복해서 그렸지요. 그림 속 크고 작은 파란 말들은 벼랑 끝에 서 있기도 하고, 무지개 빛깔 세상을 질주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색채로 말을 그릴 때도 파란 말 한두 마리를 잊지 않고 그렸어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한 화가가 남긴 그림 속 파란 말은 현실세계에 실재하지 않는 허상이 아니었습니다. ‘꿈은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사람들에게 활짝 열어준다.’ 폴란드 소설가이자 시인의 언급처럼 드넓은 목장이 아닌 몽롱한 꿈결을 질주할 법한 파란 말은 지칠 줄 모르는 길잡이였어요. 황폐한 현실세계 너머 또 다른 세계로 이끌어 줄 신뢰할 만한 안내자였지요.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프란츠 마르크#푸른 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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