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칠전팔기 구직’ 이 씨는 실업급여 받을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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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와 함께 하는 진짜 복지이야기]

지난달 서울의 한 구청에서 열린 실업급여 신청 설명회장. 자칫 경직된 행정 때문에 제도 취지와는 반대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달 서울의 한 구청에서 열린 실업급여 신청 설명회장. 자칫 경직된 행정 때문에 제도 취지와는 반대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DB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A 씨는 2013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재취업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6개월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도했다. 월 9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실업급여를 쪼개고 쪼갰다. 월세, 공과금, 국민연금, 카드대금에 경조사비까지….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았다. 은행신용등급도 줄곧 1등급이었다. 그는 차상위계층이지만 ‘신용은 생명이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A 씨에게 실업급여는 생명수와도 같았다.

○ “동일 사업장 두 번 구직” 실업급여 거부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자는 ‘적극적인 재취업활동’을 해야 한다. 재취업활동의 증거로 면접자의 명함이나 구직활동내역조회(워크넷), 취업활동증명서(취업사이트) 등을 제출해야 한다. A 씨도 남들처럼 워크넷과 취업사이트에 구직등록을 하고 여러 기업에 이력서를 냈다. 그러나 예상대로 취업은 쉽지 않았다.

구직활동 4개월째 A 씨는 한 취업사이트에서 모 어학원의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사실 A 씨는 16년간 국내 굴지의 항공사에서 부사무장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10년간 서울시 영어 문화관광해설사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미국에 2년간 거주하면서 한인방송국에서 일한 적도 있다. 일을 한 대부분의 기간이 영어와 관련돼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영어실력에 부족함을 느껴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만둘 때까지 영어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던 터라 A 씨는 어학원의 채용공고를 발견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학원에서 일하다 보면 영어를 접할 기회도 많고 수강할인의 혜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결과는 서류 탈락이었다. 그런데 5개월째 다시 취업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번에는 다른 부서의 채용공고가 났다. 재차 지원하면 그 어학원에서 자신의 도전정신을 좋게 봐주지 않을까 해 다시 지원했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고용센터에서는 A 씨가 ‘허위 혹은 형식적 구직활동’을 했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동일 사업장에만 반복해 구직활동을 하는 것’은 형식적 구직활동이고 A 씨가 어학원에 두 번 지원한 것이 거기에 해당한다는 논리였다. A 씨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필자에게 물었다.

“변호사님, 고시공부하다가 한 번 떨어지면 바로 다른 길을 택해야 합니까? 꼭 가고 싶은 회사가 있어도 한 번 떨어지면 그 회사는 포기해야 하나요? 칠전팔기 정신은 실업급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냐고요. 저는 같은 곳에 지원하면 안 되는 줄 정말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 ‘형식적 구직땐 1회 경고’ 규칙 위반

설령 고용노동부에서 동일 사업장 반복 지원 금지에 대해 정확히 고지를 했고 A 씨가 이를 간과한 과실이 있다고 치자. A 씨는 5개월 동안 단 한 차례 같은 어학원에 지원을 했다. 그것도 다른 부서에. 그것을 과연 동일 사업장에 반복해서 지원했다고 볼 수 있을까. 당시 노동부는 정책브리핑에서 ‘허위 혹은 형식적 구직활동의 요건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1회 경고 조치하고 2회 부지급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A 씨에게 경고 조치는 없었다. 현재 A 씨는 센터에서 진행한 1심 소송에서 승소해 확정을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실업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위험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위험에 각국의 대응 방안은 차이가 있다. 사회보험제도가 발달한 유럽에서는 대부분 실업급여와 실업부조제도를 병행하고 있다. 수혜율이 60%를 넘고 개인적인 사유로 실직해도 일정 기간 지급유예기간을 거쳐 급여를 지급한다. 한국은 실업부조를 시행하지 않고 실업보험(고용보험)만 운영하고 있다. 그나마 실업급여 수급요건이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해 수혜율이 낮은 점, 급여기간이 짧고 임금대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허위 혹은 형식적 구직활동에 따른 부정수급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그러나 과도하게 경직된 행정으로 인해 A 씨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사법적인 구제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좀 더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제도를 고안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실업정책에 도움이 되리라 본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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