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38>아내의 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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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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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처음엔 단순히 열대야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 말고는 딱히 다른 이유 같은 건 없어 보였거든요. 네, 맞습니다. 지난 6월 중순부터였어요. 사실… 저나 아이들이나 아내가 베란다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을 꽤 오랫동안 알지 못했던 게 맞습니다. 그땐 아내가 잠만 그곳에서 잤거든요.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거실에 나왔다가 베란다에 이불을 깔고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하지만 전 그때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더워서 저러나, 하고 말았을 뿐입니다. 이 나이쯤 되면 부부라도 한 침대에서 자는 게… 그저 의무감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지 않습니까? 각방 쓰는 부부들도 많고…. 아, 저요. 저는 올해 쉰두 살이고요, 작은 중장비 임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과 중3인 딸아이를 두고 있지요. 네, 많이 바쁩니다. 새벽 여섯 시부터 사무실에 나가 있어야 하고요, 저녁엔 거래업체 소장들이나 소속 기사들하고 회식하는 날이 많습니다. 하지만 뭐 도박을 하거나 이상한 주벽이 있지도 않습니다. 다른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어쨌든 이 땅에서 애들 뒷바라지하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거, 그거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실 아내가 더 이해되지 않았던 것도 맞고요…. 처음엔 잠만 베란다에서 자던 아내는… 어느 날부터인가 아예 그곳 베란다에 간이침대를 들여놓고, 마치 그곳이 자신의 방인 듯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다른 건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요. 제 아침 식사도 늘 챙겨줬고 아이들 간식이나 빨래, 청소, 뭐 다른 잡다한 집안일도 예전처럼,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해나갔거든요. 단지, 생활만 그곳에서 했을 뿐입니다. 그곳에서 책을 보고, 그곳에서 잠을 자고, 그곳에 앉아 빨래를 개켰습니다. 어쩌다 주말 저녁 가족 모두가 거실에 앉아 TV를 볼 때에도 아내는 그곳 베란다에 앉아 거실 유리창 너머로 브라운관을 쳐다보았습니다. 참다못해 제가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지요. 지금 그게 뭐 하는 짓이냐고, 그게 무슨 청승이냐고. 아이들도 대놓고 말은 못 했지만, 아마도 제 엄마 때문에 많이 불편했을 겁니다. 막내가 몇 번, 엄마가 어디 아픈 건 아니냐고 저한테 물어온 적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내는 제 말에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기껏 한다는 말이 몸에 열이 많아서 그렇다고…, 여기가 편해서 그런다고만 하니…. 저도 말문이 막힐 수밖에요. 다른 문제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런 아내가 사라진 건 지난 일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그때도 모처럼 가족 모두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TV에서 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또 예의 베란다에 앉아 유리창 너머로 TV를 보고 있었지요. 그렇게 한참 동안 TV를 보다가 어느 순간 슬쩍 베란다를 바라보았는데, 아내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아, 이런 말하는 제가 참 괴롭지만… 사실 전 처음엔 아내가 베란다 너머로, 그러니까 12층 아래로 뛰어내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은 불가능하니깐요. 거실엔 분명 저와 아이들이 있었고, 밖으로 나갔다면 우리들이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지요. 아내의 짐도, 옷도, 신발도 모두 그대로였고요….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 가지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는 아내가 사라진 걸 알고 제일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 층 정원부터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아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안방에도, 거실에도, 화장실에도, 아내는 마치 연기처럼 훅,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네, 그래서 사실 며칠 동안 신고를 하지 못한 게 맞습니다. 안개가 걷히듯 휙, 사라지고 말았다는 말을, 그 누구에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말을 하면 좀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우리 집 막내는 제 엄마가 빨래가 되어 버렸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사라지고 난 베란다엔 아무런 흔적 없이, 아내가 평상시 집에서 입던 목 부위가 늘어난 티 한 장만이, 건조대 위에 초라하게 널려 있었거든요. 세탁기가 있고, 빨래 건조대가 있고, 재활용품 모아두는 통이 있고, 아내의 간이침대가 있는 베란다에… 외롭게 걸려 있는 아내의 늘어난 티셔츠 한 장…. 저는 아내의 간이침대에 앉아 그 티셔츠를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았습니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바로 앞 동 아파트의 불 켜진 주방이었습니다. 그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는 다른 많은 아내들…. 아내 또한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겠죠. 한데, 정말 제 아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정말 빨래가 되어버린 것일까요? 저는 정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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