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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있어야 할 것, 없어도 될 것

입력 2017-06-21 03:00업데이트 2017-06-21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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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명물인 코퍼스 시계.
조성하 전문기자
어렸을 때 강아지를 잃은 적이 있었다. 얼마나 애가 탔는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만큼은 주변에서 누가 죽었어도 그보다 슬피 울지 않았을 정도로. 그땐 사랑을 받기만 하던 시절이었으니 내가 줄 수 있던 만큼의 사랑을 몽땅 퍼부은 강아지의 실종에서 비롯된 절망과 비통을 그 어떤 것도 능가할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그게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무엇이든 진정한 가치는 그게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난다는 말이.

내 사무실에선 청계광장의 조형물 ‘스프링(Spring)’이 훤히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색칠을 다시 하느라 가림막에 싸여서다. 이게 제막된 건 2009년 9월. 벌써 8년 가까운데 이 정도 세월이라면 이 다슬기 탑도 광장 풍경에 녹아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건 그렇지가 못한 듯하다. 그토록 오래 있었어도 보이지 않는 이 환경이 전혀 낯설지 않아서다. 솔직히 말하면 안 보이니 더 편하다. 진정 필요한 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없어지면 금방 티가 난다. 그런데 높이 20m, 무게 9t에 화려한 색감으로 치장되어 청계광장을 압도해온 거장의 예술품이 그렇지 않으니….

지난달 개장한 ‘서울로 7017’의 설치작품 ‘슈즈 트리’도 비슷하다. 작가와 서울시의 설명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민 반응은 싸늘했다. 이유는 하나. 그게 왜 거기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 부재다. 예술은 첫째도 감동, 둘째도 감동, 셋째도 감동이다. 마음이 동해야 이해도 하고 공감도 한다. 그렇지 못하면 거부할 수밖에. 미술관 전시작이라면 안 보면 그만이지만 공공설치 예술품은 다르다. 보기 싫어도 봐야 한다. 그런데 그 설치공간의 주인은 시민. 그러니 시민은 그 권리로 추방을 명할 수 있다. 그나마 9일간 설치로 끝나 다행이다. 스프링처럼 붙박이였다면 글쎄.

아직 기억할 것이다. 올 3월 뉴욕 월가의 황소상(Charging Bull) 정면에 세워진 ‘두려움 없는 소녀상’(Fearless Girl)을. 설치자는 글로벌 투자은행 SSGA로 소녀상은 투자기업 이사회에 여성 임원을 늘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기업에 성(性)다양성이 높을수록 재무성과가 좋았다’는 조사 결과에 근거해.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에 맞춰 세우고 ‘여성 지도자의 힘을 알라’는 문구를 넣은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황소상 작가는 반발하며 철거를 요구했다. ‘황소상의 창조적인 역동성을 저해한다’는 게 이유였다. 뉴욕시는 설치 허가가 한 달뿐이라며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다. 그런데 시민 반응은 거꾸로 호의적이었다. 그러자 뉴욕시장은 설치 허가를 내년 2월까지 연장해주었다. 공간의 주인인 시민이 공감하니 당연한 도리다.

최근 영국의 대학도시 케임브리지에서 한 공공전시물을 보게 됐다. 케임브리지대의 31개 칼리지 중 하나인 코퍼스크리스티 도서관 외벽의 ‘코퍼스 시계(Corpus Clock·2008년 설치)’다. 톱날을 가진 금박 원반(지름 1.5m)의 괘종시계로 바늘 대신 동심원(대·중·소)을 이룬 작은 구멍을 이동하며 비추는 발광다이오드(LED) 불빛이 시 분 초를 나타낸다. 그리고 12시 위치엔 괴기한 형상의 메뚜기로 보이는 ‘시간 포식자(Time Eater)’가 앞뒤 다리로 톱날 원반을 돌리고 원반 밑에선 추가 진자운동을 반복한다.

이 시계는 케임브리지의 명물이다. 특이한 형상과 독특한 작동 모습은 물론이고 시계에 담긴 과학과 철학에 대한 짙은 공감과 깊은 통찰이 인기의 요체다. 그건 시간에 대한 경각심이다. 이걸 만든 존 테일러 박사의 말은 이랬다. “시간은 우주 탄생과 더불어 시작됐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시간의 상대성을 우린 잘 안다. 사형수의 5분과 사랑에 빠진 연인의 5분이 똑같지 않음이다. 저 원반과 불빛은 빅뱅을 상징하고 우리의 시간은 거기서 비롯됐다. 그런데 악마를 닮은 저 벌레는 단 1초도 쉬지 않고 우리의 시간을 게걸스레 갉아먹고 있다.”

이 메시지에 공감 못 할 인류는 없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귀중한 시간이 갉아 먹히는 장면을 보고 그 음험한 소음을 들으면서도 시계 앞을 뜰 줄 모른다. 공감의 결과다. 이 시계 조형물의 백미는 매시 정각의 이벤트다. 쇠사슬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관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영혼의 포획을 상징하는 쇠사슬은 사후 치를 죗값(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중)이다. 따라서 이건 시간의 종말인 죽음을 상징한다. 이 시계를 제막한 이는 ‘시간의 역사’를 저술한 케임브리지대 출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그보다 더 이 시계의 의미를 돋보이게 할 주인공은 없다. 청계광장에서도 이런 공감과 통찰의 조형물을 만날 수는 없을지.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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