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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대이작도 풀등, 그 그림의 떡

입력 2017-05-31 03:00업데이트 2017-05-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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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풀등은 이렇듯 연흔(물결무늬)이 아름다운 황금모래벌판이다.
조성하 전문기자
세계 최대 호텔 체인 메리엇에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다. 카리브해 메리엇으로 허니문을 떠나려고 계획 중인 신부에게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신랑이 불치의 뇌종양으로 몇 달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화학 치료를 결심했고 결혼식은 앞당겼다. 그런데 그때가 최성수기라 객실이 동난 상태. 호텔 상담원은 지배인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지배인은 예약을 해주었다. 그것도 전망 좋은 방으로.

항공권도 문제였다. 이번에도 상담원이 나섰다. 그러자 항공사도 호응했다. 메리엇도 객실을 무료 제공했다. 넉 달 후, 상담원은 신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멋진 신혼여행을 즐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고. 카리브해 섬에서 아내와 더불어 보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리는 남편의 글도 있었다.

이걸 보면 소임(所任)과 친절은 별개가 아니다. 감정이입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다. 어차피 할 일도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기적도 일상사가 된다. 20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들은 교민의 경험도 비슷하다. 식당을 차리려고 시청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곤 어느 부서의 누구를 찾아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일주일 후 오라는 것뿐. 이 부서 저 부서를 찾아 헤매던 한국 행정에 익숙했던지라 미심쩍었다. 내주지 않으려는 건 아닌지…. 그런데 가보니 허가서가 발급돼 있었다. 곰탕 조리 과정에서 쇠기름을 버린다니 처리 장치를 추가하라는 메모와 함께.

그는 하도 신기해 보여 의사결정 과정을 추적했다. 그러고는 놀랐다. 같은 행정이고 모두가 공복(公僕)인데 양국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게. 신청서는 7개 부서를 돌며 담당자의 회람을 거쳤다. 각 부서는 관련 부분만 살펴 가부를 표기하거나 조건을 명시한다. 쇠기름 처리 장치는 환경부 결정이었다.

기자는 40년이 지났건만 ‘해태 이유서’라는 서류를 잊지 못한다. 아버지를 여읜 열아홉 청년이 호주 상속을 해야 하는 걸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본적지 구청을 찾았는데 그때 담당 공무원이 댓바람에 내준 게 그것이었다. ‘해태(懈怠)’란 ‘어떤 법률행위를 할 기일을 이유 없이 넘겨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 당시 내가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그래서 물었지만 그는 사법서사 사무소 위치만 가리켰다. 거기 가서 대필해 오라고. 모르겠다. 이런 공무원이 지금도 있는지. 있을 거라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취재차 찾았다가 알게 된 인천 앞바다 대이작도 주민의 고민 때문이다. 이 섬은 앞바다에서 매일 두 번 일어나는 기적 같은 자연현상 ‘풀등’(혹은 ‘풀치’)으로 이름난 곳. 수십만 평의 광대한 황금모래밭이 썰물 때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게 실제 보면 ‘바다의 신기루’나 ‘해중 사막’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대이작도에 이걸 보러 오는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달라졌다. 더불어 섬 주민의 시름도 커져만 간다. 주말이면 하루 100명을 훌쩍 넘기던 풀등 관광객을 잃어서다. 계기는 국가안전처의 ‘권고’. 일정 시간 후엔 수중에 잠기니 사람이 풀등에 있는 한은 배를 200m 이내에 대기(유선 및 도선사업법 시행령)하란 것이다. 물론 잘못된 지침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풀등 관광은 고작해야 서너 시간, 그나마도 대낮에 한 번뿐. 그런데 정원 6명 보트가 그렇게 매이면 하루 태울 수 있는 관광객은 열 명쯤에 그친다. 그래서 승선료(1만 원)가 두세 배로 뛰었다. 그게 방문객 격감과 시름의 원인이다.

마을 이장 김유호 씨(50)는 34년째 관광선을 몰아온 풀등의 산 역사. 5년 전엔 공유수면(풀등)점·사용허가와 유선영업 허가필증까지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거의 중단된 상태. 그는 유선 및 도선사업법에 근거한 그 권고가 오용(誤用)이라 항변한다. 풀등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기막힌 생태관광자원이다. 잘만 운영하면 생태관광의 보고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또 이제껏 해온 방식으로도 안전하게 훼손 없이 지킬 수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인간 간섭 최소화가 생태관광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훌륭한 자연에서 직접 체험을 통해 자연보전 의식이 강화되도록 이끄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런 만큼 새 정부에 기대를 건다. 거창하게 침체일로인 국내관광 활성화가 아니더라도 단지 섬 주민의 생업을 위해 어떤 기능적인 조치를 취할 것인지다. 메리엇 직원의 열정, 라스베이거스 시청의 스마트한 대응. 그 열쇠는 고객과 시민 편에 서는 것인데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새 정부의 슬로건과 상통해서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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