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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사람과 기계의 208초 공방

입력 2016-10-12 03:00업데이트 2016-10-1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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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포스터.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은 1549편의 허드슨 강 불시착은 항공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경우다.
조성하 전문기자
 2년 전 11월 중순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밤새 영하권이었던 뉴욕 하늘은 청명했다. 맨해튼 빌딩 숲은 물론이고, 허드슨 강 너머 뉴저지 주까지 또렷이 시야에 들었다. 그때 눈앞에 있는 강에 불시착했던 어떤 여객기 사고가 떠올랐다. 지금 상영 중인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낳은 바로 그 사고다.

 2009년 1월 15일, 탑승자 155명은 ‘디칭(Ditching·항공기의 수면 위 불시착)’으로 허드슨 강 위에 떠있던 항공기 날개에 서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 장면을 새벽에 CNN의 생중계로 시청했다.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내가 만약 저기에 있었더라면….’ 큰 사건일수록 기자들은 종종 그런 꿈을 꾼다(엄청난 특종기사를 쓸 수 있으니까!). 전망대에서 허드슨 강을 보자 그 사건과 그 꿈이 되살아난 것이다. 

 기장 설리(본명 체슬리 설렌버거)는 영웅이 됐다. 그렇지만 영화는 정부의 교통안전조사위원회 활동에 더 무게를 둔다. 설리를 ‘탑승자를 사지로 몰아넣은 형편없고 무모한 조종사’라며. 충분히 회항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데이터가 그런 주장의 근거였다. ‘208초’는 이륙부터 디칭까지 걸린 운명의 시간. 설리와 부기장이 조종한 1549편은 이륙 직후 921m 상공에서 버드스트라이크(Bird Strike·새떼와의 충돌)로 두 엔진이 고장 나는 바람에 이륙 208초 만에 허드슨 강 위에 불시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08초’는 ‘허드슨 강 기적’의 상징. 그러나 조사위는 ‘오판과 실수의 208초’로 받아들였다. 디칭을 해서는 안 됐다는 것이다. 항공시뮬레이터(모의조정장치)와 운항정보교신장치가 그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시뮬레이터에 실제 상황과 똑같은 조건을 입력하자 근처의 두 공항에 모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설리의 증언과는 달리 운항정보교신데이터에 따르면 1번 엔진은 버드스트라이크 후에도 최소추력으로 가동 중이었다.

  ‘승객 100만 명을 수송한 41년 비행경력이 208초로 평가받는구먼.’ 설리는 디칭을 오판으로 몰아가는 조사위 회의장으로 향하던 중 이런 말을 한다. 그의 독백에선 절망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설리는 그 상황에선 디칭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고, 그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계는 그 선택과 확신을 무참히 무너뜨리려 하고 있으니…. 그래도 설리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 바로 문제가 된 A320 기종만 4765시간을 조종하며 얻게 된 확신이 그 버팀목이었다. 이 기종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이었다. 

 그 확신이 마침내 그를 구했다. 청문회는 기계로부터 얻은 데이터의 오류를 지적한 설리 기장의 요청에 따라 시뮬레이터 입력치를 바꿨다. 그 결과 모의비행 착륙은 모두 실패. 최소추력으로 가동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1번 엔진을 수거해보니 데이터 오류로 드러났다. 설리가 지적한 위원회의 오류는 ‘왜 인적요소(Human Factor)를 배제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사람의 실수를 밝히자면 인적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모의비행엔 그게 없었다.” 시뮬레이터 조종사들이 사고를 만난 순간, 아무 고민 없이 회항을 결정한 ‘기계적 반응’을 말한 것이다. 

 그 지적에 수긍한 조사위는 ‘35초’를 추가한다. 사고 직후 35초간 설리와 부기장은 비상대처 매뉴얼대로 두 번의 엔진 재점화 시도와 회항 가능 공항 찾기 등 모든 시도를 했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부기장은 설리의 노련함이 모두를 살렸다고 말한다. ‘그런 저고도에서도 안전하게 불시착한 건 비상대처 매뉴얼을 뛰어넘어 15번째 보조동력장치부터 켠 덕분’이라고.

 영화는 기계만 믿고 인간은 믿지 않는 무기질 조직의 편견과 오만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실제조사에선 그렇지 않았다. 35초를 추가한 것은 설리가 아닌 조사위의 제안이었다. 영화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의도된 과장이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아 누구라도 설리같이 ‘기계에서 비롯된 위험’과 조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그런 불행은 미래의 일인가. 인간이 개입하면 그런 불행은 막을 수 있는가. 대답은 회의적이다. 기계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는 인간 세계에서, 노장(老壯)의 경험과 직감을 무시하는 후학의 경시풍조는 이미 만연하고 있으니.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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