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31>재테크에 또 실패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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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기자
홍수용 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파란색이나 회색 양복만 입는다. 그는 “결정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옷 입는 문제 같은 일상적인 일을 단순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단순화를 잘한 덕분에 그는 현재까지 비교적 성공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몇 가지 정장만 입는 단순화 원리’를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다. 만약 냉장고를 사는 데 동그란 모양, 세모 모양, 네모 모양의 냉장고 등 기본적인 사항부터 선택지가 너무 많다면 머리가 터지지 않겠는가. 적어도 모든 냉장고는 직육면체라는 기본은 정해져 있어야 세부 기능을 살피며 냉장고를 효율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많은 사람이 올해도 재테크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저금리와 증시 및 부동산 시장 침체의 영향이 크지만 너무 많은 투자 결정의 선택지를 단순화하지 못한 채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집을 살까, 말까’ ‘집을 산다면 아파트를 살까, 단독을 살까’ ‘여윳돈을 적금에 넣을까, 펀드에 넣을까’ ‘대형 주식을 살까, 중소형 주식을 살까’ 등의 기본적인 질문지들을 놓고 머리가 아팠다. 그러니 ‘물가연동채권이 유망하니 투자하라’는 식의 조언을 실천할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재정 상태가 올해 초에 비해 달라진 게 있는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통장에 돈을 그대로 묵혀뒀거나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돈을 써버린 사람이 많을 것이다.

미국의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캐스 선스타인은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너지(Nudge·쿡 찌른다는 뜻)’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국민들을 올바른 길로 유도하려 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근로자들에게 유리한 퇴직연금 프로그램을 실시하면서 근로자가 따로 가입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개인적인 재테크를 할 때도 강제성이 필요하다. 월급 중 일정액을 배당주 펀드나 연금저축에 자동 불입되도록 설정해 두자. 처음에는 펀드 수수료가 비싸고 연금저축보험 사업비가 많이 든다는 점들 때문에 이런 ‘반강제 투자’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투자할 데가 없으니 일단 들어두자’ 하는 마음으로라도 일단 가입해두면 장기적으로 재테크 효과는 서서히 나타난다. 일정액을 매달 자동 불입하기에 적당한 펀드는 가치주 펀드, 성장형 펀드, 인덱스 펀드다. 연간 수입이 5000만 원 이하인 근로자나 자영업자는 소득공제 장기펀드(소장펀드)를 자동 투자 상품으로 설정해두면 된다. 납입액의 40%에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다.

올 한 해 재테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다른 이유는 ‘우리 사이를 돌아다니는 고릴라’를 놓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릴라는 투자의 목적, 기본원칙을 의미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크리스토퍼 셔브리와 대니얼 사이먼스 교수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교수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농구공을 주고받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패스를 몇 번 성공하는지 세어보라’는 과제를 낸다. 패스 영상 도중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두 팀 사이를 쓰윽 지나갔지만 실험 참가자들 중 절반은 패스 횟수를 세는 데만 정신이 팔려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놓친 고릴라는 ‘장기 투자를 통한 안정적 노후자금 마련이라는 목표’ ‘수익에는 리스크가 따른다는 점을 감안해 투자해야 한다는 기본상식’ 같은 것들이다. 일례로 최근 한 개미투자자는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는 소문을 듣고 ‘기업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판단해 보유 주식을 팔았다. 하지만 정작 해당 기업은 신규 자금을 유치하려 했던 게 아니라 과거 빌린 돈을 갚을 때를 대비해 상환액만큼의 증자를 준비했던 것이고 자금 사정은 달라진 게 없었다. 이 개미투자자는 해당 주식의 장래성과 배당을 보고 투자했던 것인데 초심을 잃고 큰 손실을 봤다. 개인이 근거 없는 공포에 휘둘려 실패한 사례다.

하지만 또 내년이 온다. 지금 할 일은 재테크의 목표를 점검한 뒤 생활비와 자동투자 대상을 설정하는 것이다.

재테크 목표는 결혼했는지, 자녀가 몇 명인지, 부양가족이 몇 명인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목표 조정에 따라 투자 바구니(포트폴리오)도 수정하라. 이미 바구니에 투자 대상별 칸막이가 어느 정도 명확하게 만들어져 있다면 수정의 폭이 클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종전 투자 포트폴리오가 펀드 50%, 연금 20%, 주식 직접투자 10%, 적금 10%였다면 이 비율을 유지한 채 펀드 내에서만 주식형과 채권형 비중을 조정하는 정도가 알맞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재테크#오바마#장기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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