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윤상호]적정 국방비는 정예강군의 선택 아닌 필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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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총액제한의 덫에 걸렸다.”

두 달 전 국방부의 원점 재검토 결정으로 표류 중인 차기전투기(FX) 사업의 현주소를 군 관계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군 당국이 FX의 전략적 중요성과 후보 기종들의 성능 및 기술이전 조건 등에 대한 면밀한 평가를 도외시한 채 총사업비를 맞추기 위해 가격 조건만 따지다 패착을 불렀다는 의미다. 군은 최단기간 내 사업 재추진을 공언했지만 당초 계획보다 1년 이상 차질이 빚어질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FX의 도입이 늦어질수록 전력 공백 개연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간 2019년경 노후 기종의 퇴역으로 전투기 보유대수는 현 430여 대보다 100여 대나 줄어들 것으로 공군은 우려하고 있다. 대규모 국책사업의 유찰로 국제 신인도 저하와 사업 연기에 따른 총사업비 증가 개연성도 간과할 수 없다. 많은 예산을 들여 최신예 전투기를 도입하려다 오히려 안보 공백과 예산 낭비를 걱정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을 빚은 셈이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군 안팎에선 ‘FX 패러독스(역설)’를 계기로 국방예산의 현실적 한계와 적정 규모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 국방예산 규모와 구조로는 대내외적 안보 위기에 대처할 정예강군 건설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냉철히 한 번 따져보자. 대한민국이 직면한 안보 환경은 ‘살얼음판’이다. 북한은 호시탐탐 대남 도발을 획책하면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올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국 정부가 2015년 말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재연기를 미국 정부에 요청한 것은 그 심각성을 잘 말해준다. 주변국은 영유권 분쟁 등을 빌미로 항모(航母)와 스텔스 전투기 등 첨단무기를 앞다퉈 도입하며 군비증강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군사적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동북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곧 닥칠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사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익을 지켜낼 수 있는 국방력 건설을 위한 투자는 선택이 아닌 당위의 문제가 아닐까.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정부예산 가운데 국방예산 비율은 계속 떨어졌다. 1990년대 이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인다. 최근 5년간 국방비 실질 증가율은 5%에 그쳤고, 그나마 증액분의 70% 이상이 인건비와 급식비 등 경직성 경비로 충당돼 신규 전력도입 예산은 2%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는 군 개혁이 좌초되고, 정예강군 건설이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주변국은 어떤가. 중국은 1990년대 이후 연평균 국방비를 10% 이상 증액하고 신형미사일과 전략핵잠수함, 우주전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의 두 배 가까운 594억 달러(2012년 기준)의 국방비를 쓰는 일본은 북핵 위협에 대응할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구축한 데 이어 2020년대 초까지 대형상륙함과 잠수함, 이지스함을 추가로 도입할 계획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국제분쟁연구소가 201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의 분쟁강도는 아랍국가와 잦은 충돌을 빚는 이스라엘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스라엘의 GDP 규모는 한국의 20% 수준이지만 국방비는 한국의 63%에 이른다. 반면 한국의 GDP 대비 국방예산 비율은 2.5%(2010∼2012년 평균)로 세계 22개 주요 분쟁·대치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일각에선 한국의 국방비가 북한의 33배(2013년 기준)가 넘는데 군이 예산부족 타령만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방예산의 효율적 사용과 절감을 위한 군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규모와 예산구조가 다르고, 선군정치에 바탕을 둔 공산주의 자급경제체제인 북한과 한국의 국방비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북한은 한국보다 훨씬 적은 국방비로 막대한 재래식 전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군은 보유한 첨단무기의 핵심부품을 해외에서 고가에 조달해야 하지만 북한은 야포와 전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무기와 수리부속을 자급자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은 핵과 막대한 생화학 무기까지 갖고 있다. 엄중한 대내외적 안보상황을 인식하고, 미래 국가생존을 담보할 ‘적정 국방비’에 대해 정부와 국민이 심사숙고해야 할 때라고 본다. 경제규모와 위협수준에 상응하는 국방력 건설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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