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아버지와 스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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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제때에 수업료를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중학생인 아들은 앞으로 불려 나와 손을 들고 벌을 서곤 했다. 그렇게 힘들게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립할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중고교에서 수업료 때문에 고생한 아들은 아버지의 도움 없이 아르바이트로 대학 등록금을 조달해야 했다. 다행히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해 대학교수가 되었다.

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종종 아내에게 월급을 제대로 갖다 주지 못한 선생님이 있었다. 월급을 타면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선생님의 가족은 영문도 모른 채 늘 쪼들렸다. 아들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는 아버지가 정년퇴직하고서도 한참 지난 어느 해 스승의 날이었다.

연로한 아버지가 술에 취해 제자의 등에 업혀 집에 오시는 바람에 그는 중년이 된 아버지의 제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제자들은 “선생님께서 날마다 반주로 소주 한 병을 거뜬하게 드신다고 하시기에…”라고 말하며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팔순 아버지의 주량이 소주 한 병, 맞긴 맞다. 그런데 건강상 술을 줄이라는 의사의 권고를 듣고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버지의 기를 꺾지 않으면서 술을 줄이는 방법으로 아버지 몰래 술에 물을 타기 시작한 것. 처음엔 술 한 잔 덜어내고 대신 물 한 잔 붓고. 그런 식으로 야금야금 나중에는 술 반 물 반이 되었는데도 약간 치매기가 있는 아버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기분 좋게 날마다 술 한 병(?)을 비우셨다. 그러다가 스승의 날에 제자들이 올리는 ‘진짜 술’에 그만 대취하신 것이다.

“그날 만난 분들로부터 내 수업료는 늦게 주던 아버지가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먼저 도와주셨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어요.”

그는 어렸을 적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자 하셨던 아버지의 참뜻을 이해하며 교육자로서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아버지처럼 하진 못해요.”

그러나 대학교수인 그 역시 열심히 연구용역을 맡아와 대학원생들의 등록금 마련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 모양이다. 어버이날을 보내고 스승의 날을 맞이하며 세상의 아버지들이야말로 자녀들에겐 가장 큰 스승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윤세영 수필가
#스승의 날#아버지#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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