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39>농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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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사랑이란 그런 것,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 사람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때면 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 다음에 꼭 함께 먹어보리라 기억해 두는 것. 가족 간에도 애틋하게 일어나는 이 사랑의 작용이 연애 상대에서 시작해 점점 대상이 넓어지는 시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아직 즐기실 수 있을 때 경치 좋은 곳과 근사한 식당에 자주 모시고 가면 나중에 가슴이 덜 아프리라. 그런데 2연의 ‘그 사람은’ 정말 ‘정말 강하거나/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일까? 그렇기 쉽지만 그냥 성격이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의 돈을 모아 기어이 미국 여행을 하신 친구 아버지, 다녀오신 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여행 가방을 푸는데 나오는 새 물건마다 당신을 위한 것이었단다. 맨 마지막은 장난감 자동차. 선물을 기대하던 어린 손자가 기쁘게 손을 뻗었지만 그것도 당신 것! 어른들은 애 보기가 민망했단다. 자기 생각만 하는 게 행복한 사람이 있다. 이 성향으로 예술을 하면 아주 유리하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그 매혹에 몰두해서 극한까지 갈 수 있을 테다. 그 매혹을 앓을 테다. 그래서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낼 수 있을 테다. 이타적인 사람은 마음이 무르기 쉽고, 무른 마음은 초점을 독하게 잡고 있기 어렵다. 하지만 삶은 건강하리라.

시 제목이 왜 ‘농담’일까? 시인 이문재는 착한 사람이다. 그래서 착한 말씀, 아름다운 말씀을 하시는데 그게 겸연쩍어서 ‘농담’이라고 한 게 아닐까? 시에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농민운동가 전우익 선생의 수필집 제목)라는 만고의 진리를 담는 게 시인의 자의식을 건드린 것 아닐까?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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