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인사이드/김지영]‘시월드’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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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드’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채널A 토크쇼 ‘웰컴 투 시월드’가 화제다.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어머니들과 며느리들이 한자리에서 ‘대놓고’ 서로 속 얘기를 털어놓는 프로그램이다. ‘시(媤)월드’는 시댁 식구들을 뜻하는 신조어. ‘웰컴 투 시월드’는 2편(20일 방영)의 경우 2.2%를 기록했는데 그날 하루 종합편성 TV 전체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편(13일 방영)에서는 며느리에게 아들을 뺏겼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 심정과 이런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며느리의 마음이 솔직하게 펼쳐졌다. 배우 전원주 씨는 “둘째 며느릿감으로 솔직히 말해 여기 나온 윤유선(배우)을 찍어놨었는데 아들이 데려온 건 다른 사람이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전 씨는 앞서 다른 방송에서도 “둘째 며느리가 혼전 임신을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아들의) 결혼을 허락했다”, “빨래한 며느리 속옷이 아들 속옷을 깔고 그 위에 개켜 있어서 괘씸한 마음에 빨래를 걷어찼다”는 등의 얘기를 여과 없이 해 며느리들의 ‘공공의 적’이 된 터다. 이런 시어머니에게 그의 둘째 며느리 김해현 씨는 “남편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너무 바쁘게 활동하셔서 모성애가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모성애를 나를 통해 채우려고 한다”고 역시 대놓고 말했다.

며느리의 발언에 전 씨가 충격을 받은 듯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으로 망연자실해하자 옆에 앉아 있던 성우 송도순 씨가 “(이제는) 언니 아들이 아니야, 쟤 남편이지”라며 다독였다. 그러자 전 씨는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듯한 침울한 표정으로 “우리 아들이 너무 순하고, 착하고, 법 없이도 살고, 잘났고…. 그런 내 아들 건드린 며느리가 밉더라, 잘난 아들이 며느리 눈치 보면서 사는 게 싫더라”라고 말했다.

2편의 주제는 ‘돈’ 얘기여서 그런지 더욱 적나라했다. 성우 송도순 씨가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을 줘도 꼭 (줬다는) 증거를 남긴다. 현찰로 주면 그때만 헤헤 하고 잊어버리게 마련이니 꼭 통장으로 송금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의 며느리 채자연 씨가 “어머님은 세뱃돈을 주셔도 애들 앞에서 텔레뱅킹으로 보내 주신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이어 송 씨가 “아들 결혼시킨 뒤 달마다 (시부모에게) 용돈을 보내라고 했는데 그간 체크를 안 하다 얼마 전 통장 정리를 해 보니, 한 1년간 (용돈을) 안 보냈더라”라며 일침을 놨다. 이에 대해 “그건 신랑하고의 거래지 저와의 거래가 아니잖아요” 라고 며느리가 말대꾸(?)를 하자 송 씨는 “그건 성숙한 네 가정과 나하고의 거래다!”라면서 목소리를 높여 긴장감을 자아냈다.

이후 출연자들에게서 ‘시월드’와의 각종 돈 거래 사연이 쏟아져 나왔다. 개그우먼 김지선의 시어머니 이방자 씨가 “너희 새 아파트 들어갈 때 (내 돈으로) 중도금 들어간 거 알아, 몰라?”라면서 “(빌려 준) 중도금을 언제 돌려줄 거냐”고 타박을 하자 전원주 씨의 며느리 김해현 씨가 옆에 앉아 있다가 “저는 적금 털어서 아버님 인삼밭에 투자하고 수익금 기다렸는데 16년 동안 답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이번에는 전 씨가 나서서 “처음 듣는 얘기네. 우리 둘째 며느리가 무던해”라고 칭찬을 해 줄 듯 하더니 이내 “손자들 유학비를 내가 대 줬는데 걔네한테 들어간 돈이 많다. 인삼밭만큼 들어갔을 거다”라며 돌아섰다.

며느리들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사춘기 아들 방도 들어갈 때는 노크해야 하는데, (시부모님이) 결혼한 아들집에 올 때는 기척이라도 해 주셔야 한다”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결혼 12년차 배우 윤유선 씨, “어머님이 살아 온 환경과 우리 세대가 살아 온 환경이 너무 달라서 때로 정신이 하얗게 될 때도 있다”고 말하는 배우 안연홍 씨….

이렇듯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의 아슬아슬한 설전을 보다 보면 시청률 40%대를 기록하며 ‘국민드라마’ 타이틀을 얻고 종영한 KBS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이 겹쳐진다. 드라마의 대사를 통해 ‘시월드’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킨 ‘넝쿨당’은 고부간의 갈등을 실감나게 묘사하면서, 시어머니의 말에 속으로 삭이는 옛날 며느리들의 모습 대신 당당하게 타협하는 신세대 며느리의 모습을 보여 줬다. ‘넝쿨당’ 속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하루 한 번씩 서로 칭찬하기’,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영화 보기’ 등 고부 협정으로 갈등을 봉합했듯, ‘웰컴 투 시월드’의 실제 고부들도 서로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서운하고 섭섭했던 심정을 조금씩 덜어 낸다.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가족의 내밀한 사적 얘기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만 묵혀 뒀던 게 암묵적 관행이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역시 그랬다. 그런데 이렇게 고부갈등의 문제가 여과 없이 방송에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큰 변화를 체감하게 한다. 금기가 없어진 시대, 소통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시대의 거울로도 비쳐진다. TV 속 고부의 거침없는 입씨름이 늘 속 시원한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들이 진솔하게 한풀이를 하면서 마음의 매듭을 풀어 가는 과정을 보면 왜 지금 이 시대 각계각층에서 소통이 화두가 되고 있는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옛날부터 내려온 오랜 역사의 전통을 갖고 있는, 까다롭기가 어느 것보다 풀기 어렵다는 ‘시월드’와의 갈등도 이렇게 대화하면서 풀어 갈 수 있는데 이 세상에 안 풀리는 갈등이 어디 있으랴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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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대중문화#채널A#시월드#고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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