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인사이드/김지영]삶은 위로의 대상 아닌 싸워야 할 전쟁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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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들의 시대

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여기서 글 적고 있어야 십원 한 장 안 떨어집니다. 앞으로도 쭉 가난하실 것이니 하루빨리 포기하시고 출가하세요.’

‘효봉 스님’이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다. ‘효봉 스님’은 하버드대 출신의 조계종 승려이자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한 혜민 스님 ‘짝퉁’이다. ‘효봉 스님’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기간은 단 엿새. 그 짧은 기간에 1만 명이 ‘좋아요’(글에 호감을 표현하는 기능)를 눌렀다. 전체 조회 수는 무려 100만.

‘태어날 때부터 망한 인생 안 망한 척하느라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좀 쉬셔도 괜찮아요’ 같은 그의 독설에 누리꾼들은 열광했다. 혜민 스님 프로필 사진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올려놓은 효봉 스님의 정체는 패션 웹진에 근무하는 장윤수 씨(28). 장 씨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밤중에도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는 7평짜리 옥탑방에 살고 있고, 다니던 회사에서 곧 나와야 할 처지”라고 했다. 그의 ‘돌 직구’ 독설이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라 벼랑 끝 삶에서 길어 올린 성찰이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기자는 김 감독과 효봉 스님이 겹쳐졌다. 둘 다 주류와 불화한 아웃사이더라는 생각에서다.

요즘 한국 문화계의 주류를 강타한 아웃사이더는 김 감독 말고도 많다.

광고인 이제석은 지방대를 다녔고 대학 재학 중에 국내 광고상 수상을 한 번도 하지 못했으며, 국내 광고대행사 취업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해외 유명 공모전을 휩쓸면서 세계적인 ‘광고 천재’가 됐다. 보수 작업을 위해 철거된 이순신 장군 동상 자리에 놓인 ‘탈의중’ 가림용 작품으로 유명해진 그는 “변방성이나 비주류성을 계속 갖고 갈 것”이라고 말한다.

문단은 또 어떤가. 속도감 있는 문체와 현실감 있는 묘사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소설가 정유정 씨는 한국 문단의 ‘바깥’에서 온 작가다. 그의 등단은 1990년대 이후 소설가의 배출 공식, 즉 대학의 문예창작과 수학 혹은 기성 선배 소설가의 사사(師事)라는 공식에서 벗어난다. 정 작가는 간호대를 나와 간호사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직으로 일했고 미국 작가 스티븐 킹,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을 탐구하면서 홀로 글쓰기를 훈련했다. 42세에 낸 첫 소설 ‘내 심장을 쏴라’는 15만 부, 지난해 낸 두 번째 소설 ‘7년의 밤’은 25만 부가 팔렸다.

영화로 성공한 웹툰 ‘이끼’의 만화가 윤태호 역시 돈이 없어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만화학원에 다니기 위해 고향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생활비가 모자라 노숙생활까지 했다.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다 ‘이끼’로 이름을 날리기까지 20년이 걸렸다. 그 자신의 아웃사이더 인생의 신산(辛酸)함이 최근 책으로도 발간된 웹툰 ‘미생’에 녹아 있다. ‘미생’은 프로 바둑기사 입문에 실패하고 인턴사원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대기업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미생’은 포털 다음 웹툰 평점 1위다.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도 이 시대의 대표적 비주류다. 재일교포 2세로 한국에 귀화한 그는 관중의 흥미에 영합하지 않으려는 비주류 근성 탓에 늘 구단과 불화했지만, 최근 다시 대기업 구단의 러브 콜을 받는 ‘실력’을 보여 줬다. “다른 사람한테 맞춰 사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인생관이다.

아웃사이더 문화코드는 이미 ‘슈퍼스타K’를 통해 입증됐다. 기성 가수들을 놀라게 하는 음악의 고수가 변방에 수두룩하다는 걸 확인시켜 준 ‘슈스케’ 아닌가. 하긴 문화뿐이랴, 정치권의 아웃사이더 안철수는 이미 주류 정치인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잖은가.

문화계 주류로 들어온 아웃사이더들은 ‘힐링’이나 ‘치유’를 말하지 않는다. 효봉 스님의 독설이 큰 호응을 불렀던 것은 당의정 같은 위로의 글로 덮을 수 없는 현실의 쓴맛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기덕의 영화는 돈이면 다 되는 현실을 돌아보게 하면서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식 없는 이미지로 묻는다. 삶이 더는 위로받을 대상이 아니라 치열하게 싸워야 할 전쟁터라는 것, 바야흐로 아웃사이더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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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아웃사이더#문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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