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대학 학과 구조조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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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정부가 대학 구조개혁 평가 최종안을 발표했습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2023년까지 대학입학정원을 16만 명 감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이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면서 학내 갈등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중앙대에서 학부제로 구조 전환을 추진하자 교수들이 총장 불신임운동까지 불사하겠다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학과는 없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취업률과 신입생 충원율이 대학 구조개혁 평가의 주요 지표가 되면서 인문학, 예체능계 등 비인기 학과들은 구조조정 1순위로 꼽히고 있습니다. 기초학문이 고사 위기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대학도 산업 수요에 맞춰 학과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학 구조개혁을 둘러싼 찬반 의견을 소개합니다. 오피니언팀 종합 》

박상규 중앙대 부총장 경영경제대학 교수
박상규 중앙대 부총장 경영경제대학 교수
▼ 대학들 학과 구조조정해야 살아남아 ▼

사람들은 요즘 ‘대학이 위기’라고 한다. 학령인구의 감소, 수년간 계속되는 등록금 동결에 따른 재정난, 졸업생의 저조한 취업률 등의 문제는 대학 설립 자유화 이후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학 수의 증가와 맞물려 국내 대학 모두 예외 없이 ‘생존의 위기’를 맞게 됐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위기는 대학의 정체성이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양적인 성장에 주력하던 대학의 전통적인 사명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고 했다. 그가 주장한 만물유전사상은 지금 시대에 더욱 유용한 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처럼, 대학도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중앙대는 2016학년도 신입생부터 입학 뒤 2∼3학기 진로 탐색기간을 거쳐 전공을 선택하는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을 발표했다. 그간 학문 간 통섭과 융합을 어렵게 했던 원인 중 하나인 학과 사이의 벽을 낮추며 교육 단위의 기본 구조를 학과제에서 전공제로 바꾸고 학생들이 각자의 적성과 진로를 감안해 주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학사구조를 개편한다는 것이 골자다. 가르치는 교수 위주의 학사 구조가 배우는 학생 위주로 바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교수들은 학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 10년 된 강의 노트를 버리고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교육과 연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 같은 중앙대의 시도에 대해 혹자는 인기 전공 쏠림현상에 따라 사회적 수요가 적은 기초학문을 폐지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급변하는 사회 흐름에 따라, 학문의 트렌드 역시 변화가 많기 때문에 특정 전공에 대한 선호도 또한 달라질 수 있고 사회적 수요와 학생들의 수요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번 학사 구조 선진화의 기본적인 배경은 수요가 적은 학과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 간 통섭을 위한 학생들의 학문 접근성을 높여, 궁극적으로는 융합형 인재를 기르는 것이다.

한편 중앙대의 개혁이 인문학의 위기를 가속화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 인문학 전공 이수와 인문학적 소양 함양은 구별해야 한다. 중앙대의 이번 개편에 따르면 학생들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교양 강의를 들어야 하며 이 강의는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을 최우선 목적으로 한다. 사회에서 원하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이지 인문학 전공자 그 자체가 아니다. 물론 인문학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관련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변화 속도는 더이상 대학의 독야청청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중앙대처럼 학사 구조를 수요자(학생) 위주로 개편하는 대학도 있고 특성화에 방점을 찍는 대학도 있다. 한 사립대는 지방 분교의 인문계열을 축소하고 캠퍼스 전체를 공과대학 위주로 재편하려고 하며 또 어떤 대학은 융·복합 학문 단위를 신설하려고도 한다. 이 밖에 다른 많은 대학들도 사회적 수요를 감안한 학과 통폐합을 시도하면서 진통을 앓고 있다. 학내 갈등을 유발하는 이런 무리한 시도를 왜 하느냐고 비판하는 측은 유리창이 깨질까 봐 더러운 유리창을 못 닦는 것과 같다. 반대 측의 주장에 의하면 한번 만든 학과는 영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시대의 흐름과 수요를 감안한 학과는 어떻게 새로 만들까. 대학의 정원을 지속적으로 감축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사립대학은 특히 학문 단위 유연화를 통한 지속적인 융·복합으로 신규 학문 개설이 필수적이다. 한정된 자원으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 식물도 진화하고 사람, 사회가 다 진화한다. 기존의 틀에 갇혀 안주하는 것은 우리 학생들과 동문들에 대한 실례다. 어쩌면 대학 구조 개혁이라는 말도 너무 거창하다. 대학도 이제는 생존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때이다.

▼ 대학은 단순한 취업학원이 아니다 ▼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
대학 개혁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학과 통폐합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학과 통폐합은 학문구조의 변경을 동반하기 때문에 학문의 영역에서 신중하게 이루어질 일이다. 그럼에도 사회 문제가 된 것은 근년 정부에서 진행하는 대학 구조조정의 방편이 된 탓이 크다. 취업이나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라는 정부의 압력 때문에 대학들이 학문이나 교육상의 고려 없이 거의 마구잡이식 졸속 학과 통폐합을 해왔고 이번에 중앙대가 학사구조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학과 폐지’라는 극단적 처방을 내놓은 것은 그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대개 학과를 통폐합한 대학들은 사회의 수요를 내세우고, 중앙대의 학과 폐지 계획도 마찬가지다. 학과의 벽을 허물어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전공끼리 통섭하고 융합하는 틀을 만들겠다는 취지 자체는 얼핏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미사여구 속에는 대학의 학문구조를 학생들의 선택권이란 말로 포장한 시장논리에 따라 조정하겠다는 검은 속내가 숨어 있다. 학문이나 교육보다 이 구조조정의 목적이 우선한다는 것은, 중앙대 총장이 이 계획을 내놓으면서 “산업현장 요구와의 미스매치를 해결해야 한다”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발언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의 조정이 불가피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떻게 조정하고 개혁해야 한국 대학의 병폐를 없애고 질을 높일 것인가가 관건일 터이다. 한국의 대학은 전체의 80%가 사학이고 그 대부분은 족벌경영으로 문제를 일으켜 왔다. 그 때문에 대다수 학부모들이 세계 최고의 고액 등록금을 부담하면서도 학생들은 부실한 교육을 받는다. 진정한 구조개혁을 이루려면 부실 사학재단을 퇴출시킨 후 대학을 선진국처럼 공영화하는 방향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교육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현재 교육부는 전국의 대학들을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해 5등급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등급에 따라서 재정 지원도 달라지고 정원감축률도 정해지기 때문에 각 대학은 평가지표 높이기에 혈안이다. 대학은 특성이나 설립 형태, 규모 등에서 다양한데 그것들을 거의 구별 없이 경쟁시켜 하위 등급을 퇴출시키는 정책을 쓰는 것이다. 많은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 교육의 내용이나 합리적 운영과는 무관하게 교육부가 내세우는 취업 중심의 학과 통폐합 및 조정을 강행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취업과 진로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대학들도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은 고등교육을 통해 앞으로의 인생 및 진로를 위한 소양과 실력을 길러주는 곳이지 취업학원이 아니다. 취업 중심으로 대학을 개편하겠다는 것은 국가의 학문기구로서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교양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대학의 기본 목적조차 훼손시키는 발상이다.

더구나 중앙대처럼 학생 수요자의 선호에 따라 대학의 전공들을 개편하는 것이 과연 대학의 질을 높이고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이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만큼 교수진이 충분하게 확보돼야 하고 대학원에서 본격적인 전공을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학생은 학생대로 당시의 시류에 휩쓸려 제대로 전공 실력도 기르지 못한 채 졸업하고, 교수는 교수대로 수요에 따라 휘둘리면서 교육도 연구도 안정적으로 해낼 수 없게 된다. 당장의 수요가 없다 해서 그 학과를 없애면 다시 수요가 생겨도 연구 및 교육 인력이 바로 충원될 수가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이런 식의 졸속 학과 통폐합이나 폐지는 교육현장의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대학은 국가경쟁력의 토대다. 대학이 기초학문과 진리 탐구를 중심으로 하는 학문공동체의 성격을 잃게 되면 어디서 그토록 정부가 읊어대는 노벨상이 나오겠는가. 대학들, 교수들 그리고 학생들을 서로 경쟁시키는 것이 국가나 대학의 경쟁력일 수 없다는 것을 교육부 당국과 대학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박상규 중앙대 부총장 경영경제대학 교수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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