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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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어느새 총 가입자 수가 20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의 규모는 올해 500조 원을 돌파합니다. 국민연금 기금은 세계 3대 연기금 규모로 성장했지만 운용 시스템은 규모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기금운용공사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해 전문성과 수익성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현 운용체계 역시 전문가 중심의 독립성을 갖추고 있고, 자칫 독립할 때 수익성에 매몰돼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며 안정적으로 기금을 관리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을 둘러싼 양측 의견을 소개합니다. 오피니언팀 종합 》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500조원 규모에 걸맞은 독립적 기구 필요▼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에서 분리해 별도의 독립조직을 만들 것이냐가 쟁점이 되고 있다.

현재의 기금운용체계는 기금이 50조 원도 되지 않았던 1990년대 말에 구축됐다. 지금은 기금이 500조 원을 넘어서는 시점이다. 현 체계의 적합성을 검토할 때이다.

기금운용공사(가칭) 설립의 필요성은 현재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수익률이 선진국의 연기금과 비교할 때 낮다는 데서 출발한다. 2013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10년 평균 수익률은 6.1%로 캐나다 CPPIB(7.7%), 네덜란드 ABP(6.4%),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7.0%), 노르웨이 GPFG(6.3%) 등에 비해 낮다. 수익률은 평가 기간을 어떻게 잡느냐와 기금 정책에 따라서 상이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 기금 운용수익률이 반드시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금운용체계를 수익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은 필요하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수익률이 낮은 이유로 전문성 부족이 지적된다. 물론 자산운용 전문가로 구성돼 있는 기금운용본부를 전문성이 낮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또 기금운용본부가 운용 인력을 대폭 확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기금 운용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기금이사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시각 때문이다. 여기에 기금 운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금융 전문가로 구성돼 있지 않고 가입자, 사용자, 정부의 대표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전문성 부족의 근거가 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전문가 신뢰도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전문성 제고를 통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표만으로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금운용체계는 전문성 독립성 자율성 투명성 등의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그리고 금융시장이나 국민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거대한 국민연금 기금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환경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입자 관리와 급여 관리가 중심인 현재의 국민연금공단 내 조직인 기금운용본부 체계로는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금운용체계 개편과 관련해 기금운용본부의 독립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디테일이 더 중요하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구성도 전문성을 높이도록 대폭 전환하고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더욱 강화하면서 국민연금의 주인인 국민의 이해가 관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국민연금이 금융시장과 국민경제에 순기능을 할 수 있도록 ‘거대성’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 또 대체투자와 해외투자의 비율도 높여나가야 하며 기금 운용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로 인해 적정 규모의 전문 인력과 조직을 확충하지 못하는 현실도 해결해야 한다.

기금운용체계 개편의 논의 과정에서 조직이기주의, 부처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기금 운용의 분리가 반드시 국민연금공단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연금의 시대’를 맞이해 공단 본연의 업무 중 하나인 급여 관리와 노후소득 설계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책임관리 부처를 현재처럼 보건복지부로 할 것인가 아니면 기획재정부로 변경할 것인가 등과 관련해 신경전도 불필요하다. 또 국민연금공단이 전주 혁신도시로 이전하기로 예정돼 있는데 기금운용본부가 독립하면 다른 지역으로 이전될까 걱정해 독립을 반대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기금 운용 조직은 독립 여부를 떠나 기금 운용에 가장 효율적인 곳에 위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중단되었던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선 방안 논의를 검토할 때가 됐다. 거대 국민연금 기금의 관리 경험은 선진국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많은 부분을 선진국의 민영 기금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기금운용체계 개선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 서두르되 졸속으로 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 기금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관리는 국민연금의 신뢰성을 높이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
▼수익성만 좇는건 국민 노후 담보한 도박▼
우리나라 경제규모의 약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 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은 올해 드디어 기금 5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 중 하나는 이 거대 기금을 활용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면 2060년경으로 예측되고 있는 기금의 고갈 시점을 더 늦출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한발 더 나아가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위원들을 금융 전문가 중심으로 바꿔야 하고 기금의 집행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기금운용본부도 공사 형태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사회적 합의기구라 할 수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의사결정을 토대로 전문가 중심의 독립성을 갖춘 기금운용본부에서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노동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필자는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그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국민연금 기금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매월 연금 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는 가입자와 그동안 성실히 보험료를 납부해 연금 급여를 받고 있는 수급자인 국민이 돈의 주인이다. 현재 기금운용위원회는 돈의 주인인 국민을 대표해 노사정의 삼각체제로 운용되고 있으며 사회적 합의를 기본으로 기금 투자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이미 몸집이 커져 있는 국민연금 기금의 투자와 관련한 의사결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만약 금융 전문가 중심의 위원회가 운영된다면 수익성만 좇게 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이렇게 된다면 자본시장에 대한 지배는 물론이고 왜곡 가능성을 넘어 자본시장의 붕괴까지 부를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운용 사례에서 보듯이 수익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민간 군수기업 등 반사회적 기업에도 무차별적으로 투자를 한다든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천문학적 손실을 보는 때 누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둘째, 국민연금 기금의 성격이다. 연기금은 국부펀드나 시장의 일반자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궁극적으로 현 연금 수급자뿐만 아니라 미래의 수급자에게 모두 지급돼야 할 책임준비금이다. 현재의 기금운용본부를 확대 개편해 공사화한다면 국민연금이 시장 지배 아래 놓이게 될 뿐만 아니라 공적기금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자본시장의 이해에 순응하는 폐해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는 몇 가지 원칙이 정해져 있다. 무엇보다도 공공성과 안정성 및 수익성이 함께 고려돼야 하고 유동성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나중에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므로 기금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은 굴리는 것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미국의 공적연금인 OASDI(Old-Age, Survivors and Disability Insurance)는 사회보장신탁기금을 채권에만 투자하는 등 기금의 안정성 확보를 제1의 가치로 두고 있다. 현재 세계 1위의 기금을 자랑하는 일본의 연금적립금 운용법인인 GPIF도 적립금을 정부 발행 특별채권 위주로 투자하고 있음은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끝으로 강조하거니와, 기금공사를 별도로 설립한다면 해당 기관은 ‘준정부기관’ 또는 ‘기타공공기관’으로서 정부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기금공사 설립을 통해 기금의 운용 수익률을 현재보다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울러 기금운용본부를 분리해 기금공사를 설립하는 것은 ‘높은 성과’를 위해 ‘높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서 국민의 노후를 담보로 도박을 하는 것이며 대부분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을 금융 전문가 중심으로 변경하고 기금운용본부를 확대 개편해 공사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기금 운용 예산 및 인력 등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현행 기금운용본부 운영 방식을 일부 보완하는 것이 사회적인 비용을 줄이는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
#국민연금#기금운용체계#독립적 기구#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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