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실패해도 괜찮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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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20대는 ‘88만 원 세대’로, 30대는 ‘삼포(연애, 결혼, 육아 포기) 세대’로 불립니다. 한마디로 ‘아픈 세대’죠. 그렇다고 그들이 시름시름 앓고만 있을까요? 그들은 “우리도 할 말 많다”고 합니다. 직접 글도 쓰고 잡지도 만드는 2030 필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

지난해 겨울, 목공조수로 일하며 드릴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드릴 앞날을 비트와 드라이버로 빠르게 교체하며 나무에 구멍을 뚫고 피스를 박았다. 손과 드릴의 움직임이 하나의 호흡을 만들어낼 때 쾌감이 온몸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드릴이 익숙해지니 드릴과 톱만 있으면 뭐든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에 마음이 즐거워졌다.

장비만 있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뜬금없는 자신감에 곧장 드릴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독한 결정장애를 가진 내게 이렇게 빠른 결단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통장의 여유도 하루가 다르게 빠지는 머리털만큼이나 넉넉하지 않다. 드릴에도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작업장 안에 놓인 상표들을 쭉 둘러보았다. 하나도 모르겠다. 가격도 안 착하다.

목수를 보조하며 드릴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 하나. 목수 역시 드릴만 가지고 취미로 시작해 이제는 어딜 가도 구색을 갖출 정도의 장비를 마련하게 됐다고 한다. 뭐? 취미로 시작한 목공이라고. 놀라운 사실 하나 더. 은퇴 전 직업은 목공과 전혀 무관한 일이었단다. 아니 취미로 시작한 사람이 어떻게 70평이나 되는 전시장 세팅을 도맡아 할 수 있는 거냐고. 은퇴 후 취미로 제2의 인생을 사는 목수가 갑자기 원빈, 장동건보다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마음먹은 대로 모든 걸 흡수해 버리는 천재가 아닐까. 천재가 아니라면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 시크릿이라도 갖고 있는 거 아니야. 장사 잘되는 소문난 식당을 염탐하러 온 창업준비생처럼 목수의 행동을 관찰했다. 천재라고 부르기에 다소 애매한 부분 발견. 은근히 좀 틀린다. 나무를 계획한 크기와 다르게 자르기도 했고 피스를 잘못 박아 결국 아무 곳에도 붙지 않게 되는 헛박기도 여러 번이었다. 천재라고 하기에는 실수가 잦네, 라고 실망하는 사이 뾰로롱∼ 그가 가진 비밀 하나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피스를 잘못 박은 걸 확인한 그는 아무렇지 않게 뽑아 다시 옆으로 박아버렸다. 나라면 으악! 스스로를 자책하며 좌절에 빠진 채 그 핑계로 한 시간을 넘게 휴식인 듯 마음을 추슬렀을 거다. 시원하고 털털한 그의 행동이 근사해 보였다. 근데 이게 뭐야. 피스를 박았다 빼낸 자리에 동그란 상처가 나 있다. 구멍을 보지 못했나 싶어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여기 박았다 뺀 부분에 생긴 구멍은 어떡해요?” 목수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코르크 마개 모양으로 나무를 잘라왔다. 자른 나무로 구멍을 막았다. 어떤 곳은 바닥에 떨어진 톱밥을 모아 메우기도 했다. 내 호들갑이 방정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의연하고 침착한 대응이었다. 눈에 거슬리던 구멍의 흔적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보는 내내 신경이 쓰일 정도의 흠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삶의 배움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와 어려움 앞에 당황하지 않고, 시작부터 완벽에 목매달며 집착하지 않는 모습, 그리고 틀리면 다시 하는 묵묵한 자세가 취미로 드릴을 잡은 목수를 전문가로 만든 게 아닐까 싶었다.

틀리면 다시 한다. 지난해 나는 이렇게 간단한 마음을 실천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틀리면 다시 한다는 생각보다 먼저 실패에 대한 공포로 겁부터 집어먹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두려운 마음은 안정을 열망했고 안정에 대한 욕구는 과정 자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불가능한 욕심을 살찌웠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려다 보니 결국 시작도 못한 채 미뤄놓은 일이 작년만 해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뭐야,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말고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란 없는 거잖아.

‘미적거리면 실패나 평가, 고통, 시험 등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즐거운 경험과 성공, 배움, 성장, 친밀감, 자신감과는 멀어지게 된다’고 일러스트레이터 대니 그레고리는 말했다.

사람이 7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평생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1년이다. 그렇다면 평생 시작하기도 전에 겁먹은 채 미적거리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 걸까.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 올 한 해는 머뭇거리는 시간을 줄여 틀리면 다시 하는 데 써야겠다.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88만원세대#삼포세대#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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