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쌤 장민경 선생님의 좌충우돌 교단이야기]<5>“나도 어른이 되면 엄마를 찾아 떠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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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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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장 선생, 학예회에서 로미오 역할 했던 애 어떤 애야?”

“아, 우리 지헌이요? 잘생겼죠?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공부도 잘해요!”

“잘하긴 하더라. 근데 눈이 슬퍼 보여.”

5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우리 반 지헌이는 잘생긴 얼굴에 성적이 우수한 데다 춤과 노래에까지 소질이 있는 이른바 ‘엄친아’였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지헌이를 꺼렸다. 공격적이고 다루기 어렵다는 거였다.

“선생님, 지헌이 때문에 수업하기 너무 힘들어요…. 장난도 심하고 말도 잘 안 듣고. 얼마 전에는 영어 선생님한테 엄청 반항했다면서요.”

영어 과학 등을 가르치는 교과 담당 선생님들은 이렇게 내게 하소연하곤 했다. 지헌이는 3학년 때에도 담임교사와 말다툼(?)을 벌이다 수업 도중 뛰쳐나가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어 전교에서 유명세를 치렀다.

지헌이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장난도 잘 치고,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정작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또 스킨십을 매우 어색해 하는 아이였다.

나는 주말을 앞두고 아이들을 하교시킬 때 반 아이들과 스킨십을 한다.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아이가 가위를 내면 악수, 바위를 내면 포옹, 보를 내면 하이파이브를 하는 식이다. 그런데 지헌이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빠져나갔다. 방학 전에는 모두와의 포옹을 시도하는데, 한창 사춘기에 접어드는 남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다니기도 한다. 지헌이와의 포옹도 결국 실패했다.

‘독후감 쓰기 대회’ 때였다. 권장도서를 읽고 느낀 점을 쓰는 행사인데, 방과 후에 원고지를 들춰보다 목이 멨다. 지헌이가 책의 주인공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쓴 독후감 때문이었다.

‘주인공아, 네가 아빠를 찾아 숲 속으로 간 장면이 인상적이었어. 무서울 텐데도 용기 있게 잘 헤쳐 나가더라. 나도 어른이 되면 너처럼 엄마를 찾아 떠날 거야. 지금은 너무 어려서 찾을 수가 없거든.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우리 엄마를 찾고 싶어.’

지헌이 눈이 슬퍼 보였던 건, 스킨십이 어색했던 건 지헌이가 찾고 싶어 하는 ‘엄마’ 때문인 듯했다. 어느 날, 지헌이 할머니가 찾아 오셨다.

“우리 지헌이가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요. 힘드시죠? 그런데 지헌이가 18개월 때 지 어미가 집을 나갔어요. 그때부터 내가 지 애비랑 키웠는데 다섯 살 때던가. 내 손을 잡고 가다가 엄마랑 손잡고 걸어가는 제 또래 아이를 봤어요. 그 어린 게 한참을 멈춰서 바라보더라고요. 지헌이 몰래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지헌이가 독후감에 엄마를 찾고 싶다고 썼어요. 물론 할머니께도 늘 감사하고 있다고도 썼고요. 알고 계시죠?”

“알죠. 내가 싫어할까 봐 나한테는 그런 얘기 안 해요. 사실 난 지헌이 어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데 말 안하는 거야. 괘씸해서….”

여장부처럼 당당하시던 할머니는 한참을 울다 가셨다.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그 뒤로 난 지헌이가 싫어해도 다가가서 손을 잡거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럴 때마다 지헌이는 나를 경찰에 신고할 거라며 소리를 질렀다. 지헌이가 장난을 심하게 치거나 나의 인내력을 시험할 때에도 많이 참고, 따로 남겨서 대화를 했다.

그렇게 두 학기가 지나고 종업식 날이었다. 아이들은 교실 곳곳에 쌓아 둔 짐을 한 아름 끌어안고, 어깨에도 짊어지고 나와의 마지막 포옹을 했다. 반 아이들 모두와 포옹한 뒤에 보니, 지헌이가 화분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옆에 서 있었다.

“지헌아, 사랑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헌이를 품에 꼭 안았다. 지헌이는 내 품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비록 두 팔로 나를 꼭 안아주진 않았지만 그렇게 지헌이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아이가 엄마 품에 이렇게 꼭 안길 수 있길 기도했다.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초등쌤 장민경 선생님의 좌충우돌 교단이야기#교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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