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쌤 장민경 선생님의 좌충우돌 교단이야기]<2>‘대(놓고)화(내기)’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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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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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선생님, 우리 애는 도무지 저랑 대화를 안 하려고 해요. 어떻게 된 게 물어봐야 겨우 몇 마디 대답하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는데, 어쩌죠?” 고학년 담임을 할수록 자주 듣게 되는 엄마들의 하소연이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만날 화만 내요. 잔소리만 하고. 대화하자고 해놓고 제 말은 듣지도 않아요.” 고학년 담임을 할 때마다 듣게 되는 아이들의 하소연이다. ‘대화’가 ‘대놓고 화내기’의 준말이란다.

나는 별로 자상하거나 친절한 교사는 아니다. 키도 크고 목소리도 낮고 무표정일 때가 많아 첫인상도 좋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나에게 대화를 많이 시도한다.

“도대체 똑같은 얘기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해요. 숙제도 안하고 알림장도 안 보고 문제집도 안 풀고. 학원도 돈만 아깝게 열심히 가지도 않고. 애들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물어보면 ‘엄마는 알 거 없다’고 소리나 지르고….”

아이 엄마는 결국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 남편과의 문제, 동네 엄마와의 불화,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까지 풀어 놓는다. 그럴 때 나는 휴지도 여러 장 건네 드리고 맞장구도 친다. 그런데 그 정도의 반응만으로도 그 엄마는 정말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 이후로도 감사문자도 보내고, 지나가다 들렀다며 수다도 떨다가 돌아간다.

아이는 아이대로 불만이 많다.

“어제는 샘도 아시잖아요. 저희 반 애랑 옆반 애랑 말싸움 있었던 거. 그래서 좀 늦게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절 보자마자 질문을 백 개 정도는 하시는 거예요. ‘너 숙제 다 했어? 방 정리는? 영어단어는 다 외웠고? 오늘 알림장은 뭐야? 친구들이랑 별일 없었지? 근데 너 기분이 왜 그래? 선생님한테 혼났어? 애들이랑 싸운 거야? 옷은 이게 뭐야! 몇 살이니 도대체? 뭐했는데!!!….’ 짜증나서 방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서 엄마 말이 말 같지 않냐는 거예요. 참나.”

대부분의 아이가 엄마의 질문 공세에 숨 막혀 한다. 나는 질문을 퍼붓지 않는다. 사실 상대의 말을 듣고 있으면 물을 새도 없다. 그 대신 가끔 먼저 한 가지 질문은 한다. “무슨 일 있었어?” 그러곤 눈을 맞추고 듣고 있을 따름이다.

어떤 때는 고민이 있어 보이는 학생과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간다. “선생님, 저희 아빠랑 언니가 사이가 엄청 안 좋거든요. 그래서 언니가 가출을 했어요.” 아이스크림을 고르면서 아이는 묻지도 않은 얘기를 풀어낸다.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또 어떤 때는 운동장에서 공 주고받기를 함께한다. “엄마가 글러브가 너무 비싸다고 안 사줘요. 나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언젠가는 사주겠죠?” 글러브를 사달라고 졸랐다가 엄마한테 혼난 얘기를 털어놓는다.

아이들도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공부, 알림장, 영어단어 얘기가 아니다. 친구들과 있었던 일, 가족과 있었던 일, 선생님과 있었던 일…. 나와 특별한 시간을 공유하며 대화했던 아이들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맡은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내 편에 서서 오히려 교사인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엄마도 대화를 원한다. ‘질문 퍼붓기로 시작하는 대놓고 화내기’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서로 진지하게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아이들이 원하는 대화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좌충우돌 교단이야기#장민경#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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