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강혜승 기자의 엄마 도전기]‘딸 바보’ 꿈꿨지만…육아는 전쟁이었다

동아일보 입력 2012-09-13 03:00수정 2012-09-14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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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X대디도 힘들어요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힘든 건 엄마만이 아니다. 아빠도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X세대’로 불린 1970년생 아빠 ‘X대디’들이 그 한 가운데에 있다. X대디는 임신 출산 육아의 책임을 아내에게만 떠넘기지는 않는다. ‘딸 바보’ ‘아들 바보’를 자처하는 이들은 친구 같은 아빠, 다정한 아빠를 꿈꾼다.

이들은 부성(父性) 태교에도 눈떴다. 배 속 아이에게 엄마 목소리보다 중저음의 아빠 목소리가 더 잘 전해진다며 밤마다 아내 배에 대고 동화책을 읽어 주는 아빠도 있다. 솜씨 좋은 아빠는 컴퓨터 작곡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자장가도 직접 만든다. 병원에서 들으니 분만실에서 아이 탯줄을 직접 자르겠다는 아빠도 많아졌다. 가위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며 탯줄을 자르곤 생명을 받아 낸 감격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단다. 온라인 카페에선 ‘곱창으로 탯줄 자르는 연습을 하라’는 아빠들끼리의 조언도 오간다. 곱창 자르는 느낌이 탯줄 자를 때와 비슷하다나?

얼마 전 다녀온 구청 보건소 부부 출산 교실에서도 ‘달라진 신세대 아빠들’을 볼 수 있었다. 주말 오전 10시면 꽤 이른 시간인데도 40여 쌍의 예비 엄마 아빠가 강당을 가득 메웠다. 강사는 “토요일 아침이면 피곤할 텐데, 참 착한 아빠들이에요∼”라며 기특해했다.

이날 모인 예비 아빠들은 배 속 아기에게 들려줄 노래도 따라 부르고, 율동까지 기꺼이 따라했다. “내복(상·하의 분리)이 좋을까요, 우주복(상·하의 일체)이 좋을까요?” “목욕을 시킨 뒤 발라 주는 건 로션이 좋나요, 오일이 좋나요?” 질문도 섬세했다.

아예 육아휴직을 내고 육아 전선에 나서는 아빠도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니 남성 육아 휴직자가 지난해 처음으로 1000명을 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빠에게 육아휴직은 아직 언감생심이다. 딸을 둔 X대디 한 명도 “내 아이가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혼자 일어나 앉는 그 첫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 않으냐는 생각에 육아 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포기했다”고 했다. 회사 눈치도 눈치지만 심지어 아내에게서까지 “돈은 누가 버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이런 신세대 아빠들의 밑바닥에는 딸들이 가정을 위해 일을 포기한 엄마를 보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일을 위해 가정을 포기해 온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한 X대디는 “평생 일에만 파묻혀 자식들과의 추억이 없는 내 아버지가 지금은 쓸쓸해 보인다. 난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가장’으로 군림하는 것도 싫지만 가족에게서 ‘돈 버는 기계’ 취급을 받는 것도 싫다는 얘기다.

‘자상한 아빠’ 강박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한 30대 아빠는 “회사에서는 매주 수요일을 ‘가족 사랑 데이’로 지정해 칼 퇴근을 시키는데 반드시 흔쾌한 것만은 아니다. 좋은 아빠라면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해야 한다는 식의 강제적 분위기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고 했다.

맞벌이가 늘면서 남편의 육아 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힘들어진 것은 여자뿐이 아니다.

강혜승 기자
얼마 전 기자에게 온 e메일 제목은 눈물 아이콘(ㅠ)이 10개쯤 달린 ‘아빠도 힘들어요’였다. 그는 7개월 된 쌍둥이 아빠다. 오랜 시간 공들여 인공수정 끝에 소중한 아들 딸 쌍둥이를 얻었는데 기쁨은 잠시고, 육아는 전쟁이었다. 남자의 하루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밤새 시달린 아내를 대신해 쌍둥이를 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놀아준다. 도돌이표 돌 듯 쉼 없이 울고 보채던 아이들이 지쳐 잠이 들면 그제야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한다. 둘을 번갈아 돌보느라 출근 전부터 기진맥진하게 된다. 그는 “나도 남자로서 내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아내의 기대는 높고, 그렇다고 회사 일을 줄일 수도 없고, 정말 죽을 맛”이라고 했다.

이전 세대의 좋은 아버지상은 간단했다. 가부장적 아버지는 그 자체로 권위도 있고 가족을 부양하는 ‘좋은 아버지’였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지면서 좋은 아빠의 기준이 높아졌다. 돈도 잘 벌고, 집안일도 잘하고, 가족과도 시간을 잘 보내 주는 그런 아빠 말이다. 아, 아빠들도 피곤하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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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승 기자#엄마도전기#X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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