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자연이 그림을 그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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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입니다. 떠나고 싶지요?

어디로 가고 싶으십니까? 어디가 당신을 닮았나요? 당신을 품고 당신이 품을 수 있는 곳을 찾았나요?

조지아 오키프에게 그곳은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의 땅 산타페였습니다. 낮에는 태양이 주인이고, 밤에는 달과 별이 주인인 거대한 사막에서 “나는 전적으로 자유롭다”고 고백한 오키프는 태양을 그리고, 꽃을 그리고, 사막을 그리고, 그리고 뼈를 그렸습니다. 오키프에게 산타페 사막은 오히려 사물의 정기를 세밀하게 느끼게 하는 원초적 공간이었나 봅니다. 그녀 때문에 탄광촌이었던 산타페는 예술혼의 아이콘이 됩니다.

오키프가 매일 캔버스를 세웠던 그 동산에 사진작가 김아타 선생이 캔버스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사진작가가 웬 캔버스지요? 그러고 보니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가 거행했던 ‘사진 버리기’ 퍼포먼스가 생각납니다. 거기서 그는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처럼 엄숙하게 인달라 작업을 위해 찍은 수만 장의 사진을 바람에 흩날려 버렸습니다. 그의 사진 값을 가늠해보면 미친 짓이지요? 그럼으로써 그는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사진 컷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고, 세계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뭔가에 미친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평상심을 사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미쳐보지 않은 평상심은 세련된 매너일지 모르지만 가짜라고. 우리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용의 덕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모자라지 않고는 넘치지 않고, 넘쳐보지 않고는 중용을 찾아가는 에너지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그는 왜 산타페에 캔버스를 세웠을까요?

그가 말합니다. “해질녘 오키프의 붓질은 빨라졌고, 노을의 그림자는 나의 캔버스에서 부활한다!”

무슨 말인가요? 캔버스를 세워놓은 것 말고는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자연이, 햇빛이, 노을이, 바람이, 별빛이, 이슬이, 먼지가, 비가, 동물들의 장난이 그림을 그린다는 겁니다. 그렇게 그의 캔버스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보내고, 봄을 보내고, 또다시 일 년을 보냅니다. 시간이 그림을 그리는 거지요.

그는 산타페에만 캔버스를 세운 게 아닙니다. 홍천 숲에도 세우고, 인디언 보호구역에도 세우고, 뉴욕에도 세우고, 파리에도 세우고, 중국에도 세우고, 서울에도 세웠습니다. 바다에도 세우고 땅속에도 세웠습니다. 비무장지대에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아세요? 자연이 그린 그림은 똑 같은 것 하나 없이 그 장소의 영혼이라 부르고 싶은 특징을 오묘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을.

그러고 보니 자연이 그린 그림들의 또 하나의 철학적 포인트는 ‘시간’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 그것은 시간이다. 시간에 등을 돌리지도 말고, 시간에 맞서지도 마라. 시간은 슬프고 잔인한 존재만이 아니다. 시간은 내가 안고 가야 할 위대한 존재다.”

시간이 그린 그림 앞에 서 있다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오면서 거울을 보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찬찬히 거울을 들여다보시지요. 거울 속의 존재가 낯설어질 때까지. 거기, 평생의 시간이 그리고 세상이 그리고 내가 그린 작품이, 살아있는 작품이 들어 있습니다. 작품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한 그가 보이십니까. 그 자체로 마음에 드십니까. 젊었든 늙었든 뚱뚱하든 말랐든 외롭든 아프든 병들었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부자든 가난하든, 그를 그 자체로 인정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시간에 등을 돌리지도 않고 시간에 맞서지도 않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여행#자연#오키프#김아타#캔버스#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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