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헌재]김병현은 누구를 위하여 공을 던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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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왼손투수 류현진(31)은 ‘야구 재벌’이라고 부를 만하다. 올해 한국 선수론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에 선발 투수로 나선 그는 시즌 후 1790만 달러(약 201억 원)라는 거액을 받고 1년 더 다저스에 남기로 했다. 텍사스 외야수 추신수(36)는 2013시즌 후 7년 1억3000만 달러(약 1459억 원)짜리 대형 계약을 했다.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부족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다.

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받은 한국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BK’ 김병현(39)이다. 언더핸드 투수로 ‘핵 잠수함’이라 불린 그는 2001년 애리조나의 우승 당시 주전 마무리로 활약했다. 그의 슬라이더는 ‘프리스비(원반) 슬라이더’란 별명을 얻은 명품 구종이었다. 2004년 보스턴의 우승 때는 월드시리즈에 뛰진 않았지만 40인 로스터에 포함됐고, 정규 시즌 등판 경력을 인정받아 우승 반지를 받았다.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부와 명예를 양손에 안은 김병현은 요즘 호주야구리그(ABL) 멜버른에서 뛰고 있다. 1979년생이니 새해면 만으로 벌써 마흔이다. 미국 생활을 마치고서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KBO리그 넥센과 KIA 등에서 뛰었다. 무슨 미련이 남아 그는 손에서 공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2007년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이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공을 한 번만 더 던져 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 라쿠텐과 KBO리그, 지난해 말 도미니카공화국을 거쳐 올해 호주에서 뛰는 것도 그 공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호주로 떠나기 전 그는 “내 공에 만족했을 때 그만두는 게 목표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질롱코리아와의 경기에 그는 2년 만에 실전 마운드에 섰다. 구속은 시속 130km대 중반으로 줄었지만 역동적인 투구 폼은 여전했다. 존재감만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1이닝 2탈삼진 퍼펙트였다. 1일 경기에서도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마운드에 선 그의 얼굴은 너무 밝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김병현은 그동안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곤 했다. 이번 호주 진출만 해도 한국 선수들로 구성된 질롱코리아에 입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팀을 선택했다. 질롱코리아에 가면 스스로 나태해질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스스로를 취업준비생이라고 소개한 어떤 사람은 김병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요즘 힘든데 형 생각이 많이 난다.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며 저도 같은 정신으로 다시 도전해 보려 한다”고 썼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자의 길을 가는 그를 응원하며 힘을 얻는다. 40대 중반의 평범한 중년이 된 기자도 그중 한 명이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메이저리그#김병현#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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