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상운]JP가 백제문화유산에 남긴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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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정치부 기자
김상운 정치부 기자
“한동안 소외됐던 백제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 공이 적지 않았습니다.”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를 1993년 발굴한 신광섭 울산박물관장(전 국립부여박물관장)은 고(故)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불교미술사 연구 대가였던 연재 홍사준 선생(1905∼1980)의 요청에 따라 부여 궁남지(宮南池)를 1964년 국가사적으로 지정하는 데 JP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다.

궁남지는 7세기 백제 무왕 때 조성된 별궁 내 연못으로,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 기록에 근거해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도 궁남지 물가를 걷다보면 연못 한가운데 포룡정(抱龍亭)에 걸린 JP의 현판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한때 학계 일각에서 궁남지 위치가 잘못 복원됐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문화재청과 박물관 발굴조사 결과 인공의 담수시설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백제 문화재 보고(寶庫)인 국립부여박물관의 1993년 이전 개관과 문화재 수리 인력을 양성하는 한국전통문화대 창립에도 JP가 간여했다. 신 관장은 “1993년 8월 부여박물관 개관식에 현직 대통령인 YS를 설득해 직접 기념식수까지 하도록 한 주인공이 JP”라고 증언했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되기 전까지 백제에 대한 학계와 일반의 관심은 낮았다. 1970년대 정부의 대형 국책 발굴사업이 신라 수도인 경주에 집중되면서 백제 유적에 대한 보호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주 황남대총과 천마총, 월성 발굴 등을 포함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수립을 진두지휘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경주 발굴현장을 직접 방문한 인사는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라에 대한 높은 관심을 삼국통일이나 화랑도 정신과 연관짓는 시각도 있다. 1960∼70년대 북한 김일성과 체제경쟁을 벌이며 통일을 지향한 통치 철학을 신라에서 찾고자 했다는 것이다.

신라에 몰두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달리 JP가 백제 문화유산에 심취한 이유는 뭘까. 1차적으로는 백제 왕성(王城)이던 부여가 그의 고향인 까닭이 크겠지만, JP의 정치행보와 관련짓는 시각도 있다. 한 문화계 인사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을 모두 아우른 JP의 포용성이 백제문화의 그것과 통하지 않느냐”고 했다.

고고 역사학계에서 백제는 고대 동북아시아 문화교류의 ‘허브’로 불린다. 인도에서 태동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불교문화를 일본 열도까지 전파한 백제의 독특한 역할 때문이다. 백제 연구자인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은 저서 ‘내가 사랑한 백제’에서 “백제는 고유의 불교문화를 이룩해 신라와 일본에 영향을 끼쳤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름다움과 개방성, 포용성이 백제문화의 진면목”이라고 썼다.

24일 서울아산병원의 JP 빈소를 취재하면서 오랜만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모여 덕담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인의 포용성을 떠올렸다. 비록 군사독재 시대를 열었다는 비판이 있지만 한국정치에서 그가 보여준 협치라는 가치만은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김상운 정치부 기자 sukim@donga.com
#김종필#백제 문화유산#부여 궁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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