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이것만은…/이명옥]내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쓰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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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실내 풍경이지만 빈 새장, 빈 의자, 꺼진 촛불이 왠지 불안하다. 열린 문틈으로 발을 내디디면 이상적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죽음의 문 앞에 서면 이런 느낌일까. ‘남경민,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가다, 리넨에 유채, 162×260.6cm, 2008’ 사비나미술관 제공
평온한 실내 풍경이지만 빈 새장, 빈 의자, 꺼진 촛불이 왠지 불안하다. 열린 문틈으로 발을 내디디면 이상적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죽음의 문 앞에 서면 이런 느낌일까. ‘남경민,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가다, 리넨에 유채, 162×260.6cm, 2008’ 사비나미술관 제공
내겐 죽기 전에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내 자신의 묘비명을 쓰는 일이다.

묘비명이란 묘비에 새긴 명문(銘文)이나 시문(詩文)을 말한다. 생전에 고인이 추구했던 인생철학을 묘비에 새겨 추모하는 글이다. 비유하자면 묘비명은 산 자들이 죽은 자에게 주는 인생성적표다.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은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반면 소중한 삶을 낭비하고 간 사람들은 공개하기조차 부끄러운 점수를 받게 된다.

조선시대 시인 백호 임제는 상위권 점수를 받은 인생 모범생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묘비명에는 ‘맑은 이름이 세상을 술렁이게 할 만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임제는 조선 최고의 글쟁이, 애국자였으며 기생 황진이 무덤에 추모시를 바쳤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 말해 주듯 머리로만 살지 않고 가슴으로 살았던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묘비명은 그가 최상의 삶을 살았다는 증명서다. 묘비명을 자신이 직접 쓰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철학자 칸트와 소설가 스탕달을 손꼽을 수 있겠다.

칸트는 ‘내 머리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 내 마음 속에는 도덕률’이라는 자작 묘비명을 썼는데 그의 도덕 철학인 ‘실천 이성 비판’을 압축한 것이다. 칸트의 글을 읽으면 묘비명의 메시지에 공감하게 된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감탄과 함께 마음을 가득 차게 하는 두 가지 기쁨이 있다. 하나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이 두 가지를 삶의 지침으로 삼고 나아갈 때, 막힘이 없을 것이다. 항상 하늘과 도덕률에 비추어 자신을 점검하자. 그리하여 매번 잘못된 점을 찾아 반성하는 사람이 되자.’

소설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의 자작 묘비명에는 ‘마리 앙리 벨, 밀라노 사람, 그는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스탕달의 인생철학인 살아 있는 동안 열정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이른바 벨리슴(Beylisme)이 함축된 묘비명이다.

이제 내가 하필 죽기 전에 자작 묘비명을 쓰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를 밝힐 차례다. 예전에 실화를 책으로 옮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산 자도 장례식을 치른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의 주인공 모리 슈워츠는 어느 일요일 오후 가족과 제자, 친지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장례식을 치른다.

조문객들은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웃기도 하고, 자작시를 낭송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산 자이면서 죽은 자인 모리의 죽음을 애도한다. 모리가 사전(死前) 장례식을 치른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게 된 것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 그는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상태였다. 어느 날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친구의 장례식을 떠올렸다. 조문객들이 진심으로 고인을 애도하는데도 정작 주인공은 그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듣고 말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모리는 죽은 후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도를 받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 자들만을 위한 장례식이 아닌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슬픔을 나누는 ‘쌍방형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죽기 전 장례식으로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렸던 모리의 인생 메시지는 제자인 미치와 나누었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되니까.’

모리 식의 인생 갈무리는 내게 죽음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 주었다.

내게 삶은 아군, 죽음은 적이었다. 내 마음은 삶과 죽음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전쟁터였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나의 존재 속에 공존하고 있었다. 사는 것이 곧 죽는 것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삶과 죽음을 화해시키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모리처럼 죽기 전에 장례식을 치를 배짱은 없다. 대안을 찾았다. 장례식 대신 자작 묘비명을 쓰자. 가상의 무덤을 세우고 나는 나의 묘비 앞에 서 본다. 묘비에 어떤 글이 새겨져 있나. 아니 내 묘비에 어떤 명문이 새겨지기를 원하는가. 운명의 신은 내게 평생의 과제를 안겨 주었지만 나는 아직껏 숙제를 끝내지 못하고 묘비명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이런 묘비명이라면 좋겠다는 소망은 있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철학자 오쇼 라즈니시의 묘비명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카잔차키스)

‘그는 태어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다만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갔을 뿐이다.’(라즈니시)

언제가 자작 묘비명을 완성하게 되면 ‘죽음은 삶의 마지막 성취’라고 말하면서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시집 ‘기탄잘리’에서 이렇게 죽음을 성대하게 영접했듯이 말이다. ‘나의 생애가 끝나 죽음이 내 문을 두드릴 때 나는 그 손님 앞에 나의 생명을 가득 채웠던 그릇을 차려 놓겠습니다. 결코 빈손으로 그를 떠나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죽기전에 이것만은#이명옥#사비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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