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이것만은…/이재희]잘못된 문화재 설명 바로잡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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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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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나는 연애시절부터 강화도를 자주 다녔다. 신화와 역사의 현장이 많아서 가볼 만한 곳이다. 마니산과 삼랑성처럼 단군신화가 서린 유적도 있고, 몽골의 침략으로 도읍을 옮겼을 때의 궁터와 왕릉 등 고려 유적, 조선왕조실록 사고(史庫)와 돈대(墩臺) 등 조선시대의 유적도 많다. 그래서 승용차가 없던 시절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강화도를 찾곤 했다. 서울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이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런데 갈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니 문화재 안내문이다. 딸들이 한글을 깨치면서 안내판의 우리말 설명을 읽고 질문을 하는데,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대부분 한자에서 온 말이나 역사 용어에 대한 질문인데, 너무 어렵다는 게 문제다. 강화읍 내에 있는 용흥궁(龍興宮) 안내판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조선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하였던 잠저(潛邸).’ 글 맥락으로 보면 ‘왕위에 오르기 전 머물던 집’이다. ‘집’이라 쓰면 그만일 것을…. 문맥으로도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나는 영어 안내판에 나오는 낱말을 보고 대답을 해주곤 했다.

아이들이 영어에 눈뜨면서 나는 또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때로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곤 했다. 용흥궁 안내판의 영어 설명을 보자. ‘This palace, in which the 25th King Chel-jong(1849-1863) of the Joseon dynasty had stayed before ascending the throne, has been reported named 「Yongheunggung palace」 which was constructed by Jeong gi-she, the governors of Ganghwa in 1853.’ 이 짧은 문장에 사소하기는 하기만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이 많다. 우선 눈에 띄는 ‘before’는 ‘until’로 고쳐야 맞다. ‘was constructed’ 뒤에는 ‘and named’를 덧붙여야 한다. 그리고 ‘governor’는 단수로 써야 옳다.

우리말을 영어로 옮길 때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있다. 강화군 선원면 조선시대 사당인 충렬사(忠烈祠)의 영어 안내문에는 ‘전사청(제사 때 제수용품을 준비하던 곳)’을 ‘Jeonsa-cheong(Hall of complete history)’이라고 옮겨 놓았다. ‘典祀廳’을 ‘全史廳’으로 잘못 번역한 것이다.

불행히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비단 강화도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지방사적 담당자들이 역사 지식과 영어 능력을 갖춘 전문가에게 의뢰해 안내판을 작성해야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 10년간 이런 오류들 일부가 수정됐지만, 여전히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우리말 안내 설명은 어렵거나 틀린 것이 있더라도 각 곳에 배치된 문화해설사가 올바르게 고쳐 설명해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영어 안내문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 역사를 찾아 온 외국 관광객들에게 혼란을 줄까 걱정이다.

영어교육학자인 나에게 여행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다. 특히 해외여행은 문화체험을 통한 강의 준비 과정이다. 해외 유명 관광지를 여행하며 놀라는 사실은 자국어 설명 외에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게다가 한국어 설명 자료까지 잘 구비해 두었다는 점이다. 한류 덕택에 외국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는데,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자 오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틀린 영어 설명문을 읽는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잘못 배우고 갈 게 아닌가.

그래서 국내 유적지와 관광지 안내문의 오류를 보면 바르게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한다. 잘못된 것을 고쳐 가르치려는 훈장의 습성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게 아닌지 설핏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잘못된 문화재 안내 설명을 바로잡는 일을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현직에서 은퇴하면 카메라를 걸치고 전국의 문화유적과 명승지를 유람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사진을 찍고 고치고 수정해 담당자에게 보내면 어떨까. 한발 더 나아가 외국의 좋은 사례들까지 덧붙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여행 초기에는 할 일이 많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올바른 안내판들이 많아져 내가 할 일도 차츰차츰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고칠 안내판들이 하나둘 없어지면? 그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아내 손잡고 유적과 명승을 즐길 수 있겠지.

이재희 경인교대 교수·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죽기 전에 이것만은#이재희#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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