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철학으로 세상 읽기]<11>해병대 지원 증가와 대중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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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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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까지 모두 해병대에 간다면… 입대가 취직보다 어려워질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풍경으로 관조하는 대상과 실제 삶으로 만나는 대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동양화에서 보듯 물가 근처에서 낚시를 하면 인생을 달관할 것 같다. 그러나 직접 나가서 물가에 낚싯대를 던져보라. 주변을 맴도는 모기떼들, 작열하는 태양, 예기치 않은 폭우, 기다려도 잡히지 않는 물고기….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한가롭게 농사나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농촌에 가서 쟁기로 밭을 갈고 농사를 지어보라. 지금까지 꿈꾸던 농촌 생활이 단지 자신의 관념에서만 존재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여지없이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듯이 내면으로 말려들지 말고 바깥으로 직접 나갔을 때에만, 우리는 생각과 존재가 얼마나 불일치하는지 자각할 수 있는 법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대중매체가 관조 대상과 실제 대상 사이의 간극을 심화시킨다는 데 있다. 장 보드리야르(1929∼2007)가 말했던가? 대중매체와 소비문화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현실보다는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영상이 더 현실적인 법이라고 말이다.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즉 과잉현실 혹은 과다현실이란 전도된 현상은 이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전쟁보다는 영화 속의 전쟁이 더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흥미로운 기사가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의 해병대 지원율이 역대 최고라는 내용이다. 사실 의기소침하고 나약하게만 보였던 젊은이들이 해병대에 앞다퉈 입대하려는 움직임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병역 의무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그들의 패기도 눈여겨볼 일이다. 그렇지만 최근 해병대 지원율이 이상하리만큼 높아진 것은 최근 우리 사회에 벌어진 몇몇 일들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연평도 포격 사건, 그리고 연예 스타의 해병대 입대가 대중매체를 통해 화제가 되면서 우리 젊은이들을 해병대로 이끄는 데 영향을 주고 있으면, 여기에는 사회 특권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대중 스타에게도 확산되었다는 언론의 분석도 한몫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성이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의무가 군 입대다. 정신적으로 상명하복의 명령 체계를, 육체적으로는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하는 곳이 군대다. 가장 강도 높은 훈련으로 유명한 해병대에 자원입대한다는 것은 분명 쉽게 할 수 있는 결단은 아니다. 군 입대와 관련된 의혹을 몰고 다니는 몇몇 사회 지도층 인사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렸던 사람들이라면 젊은이들의 이런 결단에 흐뭇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혹시 대중매체가 제공한 ‘전쟁-대중스타-해병대’라는 의미의 연결망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해병대에 대한 판타지를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대중매체에 의해 주어진 판타지가 우리를 구경꾼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기 드보르(1931∼1994)의 통찰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관조되는 대상에 대한 구경꾼(spectateur)의 소외와 복종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가 더 많이 관조하면 할수록 그는 더 적게 살아가게 된다. (…) 활동하는 주체(l'homme agissant)에 대한 스펙터클의 외재성은 개체 자신의 몸짓(geste)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고, 차라리 그에게 그것들을 대표해주는 다른 누군가의 몸짓이라는 사실로 설명된다. -‘스펙터클의 사회(La Soci´et´e du Spectacle)’

대중매체가 화려하게 펼치는 스펙터클☆을 관조하는 순간, 우리는 그만큼 더 적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기 드보르의 지적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에 따르면 구경꾼의 삶은 흉내쟁이의 삶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구경꾼은 자신의 삶에 맞는 고유한 몸짓을 취하지 못하고, 스펙터클이 제공하는 스타의 몸짓을 흉내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왜 우리 젊은이들이 해병대에 앞다투어 지원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나 게임, 혹은 방송을 통해 각인된 전쟁 영웅의 스펙터클, 비현실적인 멜로드라마를 통해 각인된 스타의 스펙터클, 언론을 통해 각인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족성의 스펙터클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세 가지 스펙터클이 중첩되면서,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해병대로 향했던 것이다. 어쩌면 과도한 경쟁과 낮은 취직률 속에서 위축되었던 그들은 영웅적으로 귀족적으로 스타처럼 스펙터클한 삶을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머릿속에서 그렸던 전쟁과는 달리 실제 전쟁이 낭만적 전쟁 영웅을 꿈꿀 수 없도록 얼마나 무정한 것인지, 강한 남자의 로망처럼 생각되는 해병대와 실제로 입대해서 겪을 수밖에 없는 해병대 생활이 얼마나 다른지를 말이다. 구경꾼으로 보았던 것과 실제로 겪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항상 존재하는 법이다. 구경꾼이 아니라 활동하는 주체로 살면서 우리 젊은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던 스펙터클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스펙터클에 사로잡힌 채 해병대 생활을 영위하는 젊은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전쟁을 하나의 스펙터클한 영화처럼 관조하며 자신을 전쟁 영웅이라고 믿고 있는, 상상하는 해병대원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스펙터클에 사로잡힌다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에 시행착오를 거듭할 것이고, 심하면 모든 타인을 엑스트라라고 보는 영웅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젊은이들이 스펙터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그건 우리 소중한 젊은이들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젊은이들이 누군가를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임제☆☆ 스님의 사자후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듯싶다.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임제어록(臨濟語錄)’

불교에서 부처, 조사, 나한은 숭배의 대상이자 자신이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부모나 친척 등은 존경의 대상이자 전범으로 삼아야 할 사람이다. 그렇지만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이상이나 전범이라는 생각 자체를 제거해야만 하지 않는가? 이것이 임제 스님의 생각이었다. 기 드보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부처, 조사, 나한, 부모, 친척 등은 구경꾼이 관조해야만 하고 몰입해야만 하는 스펙터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스펙터클에 지배되면, 우리는 자신의 몸짓이 아니라 스펙터클의 몸짓을 흉내 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삶을 당당하게 영위하는 주인이 되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몸짓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 해탈이란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임제는 사자와 같이 포효했던 것이다.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제가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을 실제로 살해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죽여 버리라고 요청했던 대상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관조 대상, 즉 스펙터클일 뿐이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만든 전쟁 영웅의 이미지,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환상적으로 실현시켜 주는 드라마와 그 주인공, 억압된 남성을 극복하여 강인한 남성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해병대. 이 대목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임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새겨야하지 않을까? 영웅을 만나면 영웅을 죽이고, 스타를 만나면 스타를 죽이고, 해병대를 만나면 해병대를 죽여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불안을 안겨주는 비극적인 분단 현실,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전쟁의 참혹함과 매정함, 스타를 만들어 이윤을 남기는 연예 시스템, 그리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혹한 인내를 요구하는 해병대가 있는 그대로 그들의 눈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스펙터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드러났을 때에만, 우리 젊은이들의 결단은 절실함과 당당함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구경꾼이 아닌 삶의 주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 이것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 아닐까?

강신주 철학박사

::스펙터클(spectacle)☆::
우리의 시선을 끄는 화려한 볼거리를 의미한다. 대중매체가 발달하고 소비문화가 기승을 부릴수록, 스펙터클은 우리의 삶을 더 강하게 지배한다. 자신이 무엇을 만들기보다는 가장 세련되고 매혹적인 무엇을 흉내 내기에 급급한 삶이 시작된 것이다. 스타와 그를 추종하는 팬이라는 형식은 스펙터클 지배를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펙터클을 통해 우리가 자신의 삶이나 사회를 관조하기만 하는 무기력한 구경꾼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삶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스펙터클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야만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임제(臨濟·?∼867)☆☆::
내면을 지배하는 일체의 이상과 이념을 제거하였을 때에만, 우리가 삶의 긍정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던 선불교 승려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무위진인(無位眞人)’이란 개념으로 명료화한다. 내면에 자신을 지배하는 어떤 초월적인 자리도 없어야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정신과 삶을 뒤흔들어버리는 그의 사자후는 ‘임제어록’에 남아 아직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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