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바다 위에서 ‘吳越同舟’를 생각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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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두 NGO가 공동 운항
양국 550명씩 시민 1100명 싣고 10일간 여행하는 피스&그린보트
정치풍랑에 양국 관계 흔들리고 정상회담이 끊어져도
평화의 선상 교류 8년째 지속
동북아의 이웃 韓日이야말로 함께 폭풍과 싸우는 숙명 아닐까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나는 지금 바다 위에서 이 칼럼을 쓰고 있다. 배 안에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날아다니며 왠지 떠들썩한 분위기지만 그도 그럴 것이 승객은 후쿠오카와 부산에서 승선한 한일 550명씩 총 1100명으로 남녀노소가 항해를 즐기고 있다. 어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기항했고 앞으로 홋카이도 오타루, 그리고 원폭 피해지인 나가사키 등을 방문하는 10일간의 여행이다.

이 배는 일본의 피스보트와 한국의 환경재단이라는 두 비정부기구(NGO)가 공동 운항하는 것으로 그 이름도 ‘피스&그린보트’다. 올해로 8번째 항해지만 한일 국교 50년, 전후 70년이라는 의미 깊은 해를 맞이해 승객은 역대 최다에 달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기업의 응원 속에 젊은 학생과 아이들도 많이 타 여행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선상 기획 강사로 한일 양국에서 많은 손님이 초대됐으며 실은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기항지 각지에서는 원하는 투어를 선택할 수 있지만, 선상에서 펼쳐지는 이벤트도 실로 다양하다. 원폭과 원전 등 무거운 주제의 강좌도 있고 매직 쇼와 콘서트 등의 오락,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수영장과 게임도 있어 질릴 일이 없다. 스낵바와 선술집은 심야까지 북적인다.

내 경우는 승선한 이후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전후 70년 심포지엄을 비롯해 영화 ‘에도 시대의 조선통신사’ 감상회, 그리고 한중일을 아우르는 문화 세미나에도 참가해 초대 손님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항해가 시작된 것은 10년 전의 일. 평화를 모토로 시민을 태우고 30년 이상 세계 각지를 방문해온 피스보트의 전통에 환경재단 최열 대표가 반해 공동 기획을 제의한 것이 계기였다. 아무리 한일 관계가 나빠지고 정상회담이 끊어져도 이쪽은 문제없이 계속돼 왔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철저하게 고집하는 이 배의 가치를 다시 봤다”는 환경재단 이미경 사무총장의 메시지에 이어 피스보트의 요시오카 다쓰야(吉岡達也) 대표는 “어느 쪽 나라도 아닌 선상에서 국가의 벽을 넘어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선상 토론에서도 이 배의 진가가 드러난다. 예를 들면 내가 참가한 심포지엄에서는 한국 측에서 일본의 역사 인식을 묻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있는 한편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 열쇠는 환경 문제에 있다는 의견이 서로 나와 신선했다. 정말 그 말 그대로일 것이다. 환경오염이나 방사능 공포에는 국경이 없고 국내의 지위나 경제 격차와도 관계없다. 말하자면 환경 파괴야말로 인류 공통의 적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은 중국에서 생겨난 말이다. 본래 어원은 사이가 나쁜 오와 월 두 나라 사람들이 배에 함께 탔는데 폭풍을 만났고 침몰을 막으려 필사적으로 협력하는 사이에 사이좋게 되었다는 일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 이웃한 한일이야말로 함께 폭풍과 싸우는 숙명이 아닐까.

그런데 그 대목에서 떠올린 것은 31년 전 선상토론 때의 일이다. 한일 지식인들이 부관(釜關)페리에 모여 배 위에서 논의한다는 양국 방송사의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그러나 국가의 테두리를 넘지 못하는 논쟁에 짜증난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大島渚·고인) 씨가 “바카야로(바보)”라고 무심코 말한 것 때문에 고함이 오고가는 혼란이 연출됐다. 양국 관계의 험난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바카야로 사건’은 지금도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사실은 그 선상토론을 기획한 사람이 지난달 숨진 시네텔서울 사장(당시) 전옥숙 씨였다. 호방하게 술을 마시고, 문화·연예계에서 정치권의 여야까지 폭넓은 인맥을 가진 ‘여걸 중의 여걸’. 나하고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줬지만 한일 간 유대 구축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사람도 없다. 예상치 못한 해프닝으로 이어졌다고는 해도 지금부터 30년도 전에 선상토론을 기획한 선견성에는 감탄할 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한일 시민 1000명 이상을 태운 이 배는 당시 발상을 보다 앞서가고 있다. 과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는 어떤 내용이 될까. 한일 정상회담은 언제 실행될까…. 나는 곧 오타루에서 배를 내리지만 그런 국가 차원의 걱정은 옆으로 제쳐놓고 화기애애한 배 여행은 아직 계속된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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