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최악의 외교 참사, 대마도 불상 사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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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수교 50년 맞아 일본 내 문화재 환수는커녕
‘도둑 감싸는 나라’로 모욕당해
정부가 국민정서 구실로 할일 안 하다가 패착
일본에 불교 전파한 문화적 자존심에 큰 상처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한국이 일본군 위안부와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를 놓고 공세에 나설 때 일본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역사적 피해자라는 분명한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올해 한일 수교 50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일본에는 한국 문화재가 6만7708점이 있다.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의 42%를 차지한다. 이 중에는 기증이나 선물 등 우호적 경로를 거쳐 일본으로 간 것도 있지만 한국의 힘이 약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내준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에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문화재 반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문화재 문제에 관한 한 공수(攻守)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 어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을까.

3년 전인 2012년 10월 한국인 8명이 일본 대마도(쓰시마 섬)에서 불상 2점을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 불상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한 점은 통일신라, 다른 한 점은 고려 때 것이었다. 범인들은 체포되어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불상은 유네스코협약과 국내법에 따라 일본으로 돌려줘야 했으나 아직 대전 문화재청의 수장고 안에 있다. 일본은 이 불상들을 빨리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일본 측은 불상 반환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한국 정부가 대마도 불상 2점의 국제법적 처리를 이행하지 않는 것에 약점이 잡혀 7만 점 가까운 우리 문화재에 대한 환수 논의를 차단당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도 한국은 3000점 이상의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으나 일본이 돌려준 것은 1432점뿐이었다. 50년이 경과한 올해에는 돌려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가뜩이나 ‘혐한(嫌韓)’ 소재가 아쉬운 일본 내에서는 “한국은 도둑을 감싸는 나라”라는 성토가 잇따랐다. 지난해 11월 다른 한국인 절도단이 대마도에서 불상을 훔쳤다가 체포된 것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이래저래 이 사건은 외교적으로 최악의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 불상이 국내에 반입되었을 때 곧바로 돌려주었더라면 지금처럼 상황이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이후 불상 가운데 한 점이 1330년 충남 부석사에 봉안됐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2013년 2월 부석사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을 때에도 기회가 있었다. 법적 다툼의 소지가 없는 나머지 한 점을 먼저 일본에 반환했다면 그나마 국제사회에 체면을 세울 수 있었는데도 정부는 단안을 내리지 못했다.

법조계는 가처분 소송으로 우리가 얻을 게 별로 없다고 분석한다. 부석사가 불법적으로 불상이 대마도로 유출됐음을 입증해야 하지만 600여 년 전 일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원이 결정한 3년간의 가처분 기간은 내년 2월 종료된다. 7개월 후 다른 사유가 없는 한 일본에 불상을 돌려줘야 한다. 문화재 불법 반출은 국제적 관심사다. 유네스코가 1970년 제정한 ‘문화재 불법 반출 반입에 관한 협약’에 세계 116개국이 가입해 있을 정도다. 한국도 협약에 가입되어 있다. 한국이 마지못해 불상을 돌려주는 모습이 외국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스럽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의 결정적 실책은 지나치게 국민 눈치를 본 것이다. 훔친 불상이더라도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을 왜 미운 일본에 다시 내주느냐는 정서가 일각에 있을 수 있다. 이에 영합해 정부는 아무 일 않고 손 놓고 있는 안이한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정부는 절도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침묵하는 다수는 외면했다.

이 사건을 통해 가장 상처를 입은 것은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이다. 한국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해준 나라다. 백제 성왕이 538년 일본에 불상과 불경을 보낸 것이 일본 불교의 출발점이다. 고려대장경과 불상, 불화 등 한국의 불교문화가 일본에서 크게 환영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려 때 승려 의천은 대장경 간행에 대해 “대장경 속에 있는 천년의 지혜를 천년의 미래로 보내는 일”이라며 문화선진국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공들여 쌓아온 우리의 전통이 훔친 불상 2점으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부는 얼마나 무거운 죄를 지었는지 스스로 알고나 있을지 궁금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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