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우신]겨울철새와의 군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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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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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여러 사람이 무리지어 추는 춤을 의미하는 ‘군무(群舞)’는 종종 겨울철새의 비행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기러기들은 선두에 선 개체 양옆에 나머지 개체들이 줄지어 따르는 V자 편대비행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장거리를 여행한다. 국내 겨울철새의 최대 우점종인 가창오리는 수만 마리가 한 번에 날아오르며 하늘을 빼곡하게 채우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에 가깝기에 ‘군무’라는 표현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런데 요즈음 전국 곳곳에서 겨울철새들의 군무가 예전만 못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기러기류 오리류 고니류 두루미류 등의 겨울철새는 북쪽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번식지인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겨울진객인 겨울철새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전국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올해 우리나라의 겨울철새 개체수가 작년에 비해 약 14%인 17만 마리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겨울철새가 감소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월동지 먹이 사정 악화를 꼽을 수 있다. 월동지의 먹이자원은 겨울철새를 기아로부터 해방시키고 봄에 시베리아로 돌아가는 장거리 이동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체내에 축적하게 한다. 월동지에서 충분한 양질의 먹이를 섭취했을 때는 다음 번식기에 번식성공률이 높아져 개체군 증가로 이어지고 조류독감에 걸릴 위험도 낮아진다. 조류독감에 걸렸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저항력을 갖는다. 반대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월동지에 도착한 철새가 월동지인 우리나라에서 먹이가 고갈돼 영양분을 보충할 수 없다면 생존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먹이 사정이 좋지 않은 월동지는 다음 해에 겨울철새에게 외면당하는 악순환이 빚어지기도 한다.

최근 볏짚말이(볏짚을 비닐로 말아 가축의 사료로 쓰는 것)를 활용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겨울철새들이 수확이 끝난 논에서 중요한 먹잇감인 낙곡과 볏짚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겨울철새도래지인 금강하구 천수만 등에서 볏짚말이를 대대적으로 이용하고 있어 겨울철새의 월동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지금 정부는 생물다양성관리계약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농가가 볏짚과 낙곡을 논에 남겨두는 등 철새에게 먹이를 제공하면 그만큼 실비를 보상하는 사업이다. 이는 농민에게 최소한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발적인 철새 보호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정책이다. 또 일부 철새도래지에서는 지자체와 관계기관, 시민공동체가 협의체를 구성해 서식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하기도 한다. 철새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하여 중요한 시기에는 서식지 근처에서의 활동을 일부 자제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먹이를 공급하는 등 공존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주체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제도가 철새 보호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호주 일본 등 외국의 사례에서도 검증된 바 있다. 서식지 특성을 고려한 세심한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은 시민들과 함께하는 철새 보호 제도의 예산과 참여 인원이 너무나 적어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를 보호하기에 역부족이다. 그러므로 생물다양성관리계약 같은 방법을 더욱더 활성화해 겨울철새들에게 안정된 월동지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겉으로는 그저 아름다워 보이는 겨울철새들의 군무는 사실 여러 요소가 치밀하게 계산된 배열이다. 추운 날씨에 장거리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암컷과 수컷, 건강한 개체와 허약한 개체 등 다양한 개체 사이에서의 배려와 협동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사람을 포함한 자연생태계 전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리다.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겨울철새#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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