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덕림]모과 ‘테이프 구제법’ 아십니까

입력 2005-11-28 03:07수정 2009-10-0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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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냄새가 애틋하게 남아 있는 11월의 끝자락, 맑고 싸늘한 대기 속에서 모과가 농익어 간다. 나무 아래 서 있으면 갓 깬 병아리처럼 고운 노란 열매가 풍기는 은은한 향내가 콧속으로 날아든다. 모과 하면 흔히 못생긴 과일로 치부된다. 오죽했으면 과물전 모과를 어물전 꼴뚜기에 비겨 망신을 주었을까. 그러나 모과는 과일 중에 가장 향기로운 과일이다. 어릴 적 어른들 얘기로는 세상에서 돌배 익는 냄새와 함께 모과향이 으뜸이라고 하셨다.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함은 과일이나 사람이나 같은가 보다.

15년생 모과나무가 올가을 대풍을 이뤘다. 뿌리에서부터 곧추 뻗은 세 가닥의 줄기와 거기서 다시 뻗어 나간 여러 갈래의 가지가 경쟁이라도 벌이듯 다닥다닥 결실을 매달고 있다. 한 줄기에 서른 개 남짓, 줄잡아 아흔 개는 넘을 듯하다. 꽃이 지고 열매를 맺기 시작할 때 적과(摘果)를 해 줄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는데 별다른 낙과(落果) 없이 다산을 이루어 낸 나무의 인내와 끈기가 기특하고 고맙다. 나무의 덕도 덕이지만 나름대로 노력과 정성을 쏟아 거둔 풍작이기에 보람도 뿌듯하다.

모과나무에는 진딧물이 잘 낀다. 새 잎이 돋기 무섭게 떼 지어 달려든다. 진딧물에 시달리게 되면 모과나무는 그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진딧물이 즙액을 빨아 잎을 고사시킬 뿐만 아니라 끈적끈적한 배설물인 감로(甘露) 때문에 잎이 검게 그을리는 ‘그을음병’을 일으켜 엽록소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광합성을 못하게 된 나무는 그예 ‘불임’이 되고 만다.

두어 해 낭패를 본 적이 있는 터라 올해 들어선 일찍부터 진딧물과의 일전을 별렀다. 애초부터 독한 진딧물 농약은 안 쓰기로 다짐한 데다 마당 한 귀퉁이에 심은 푸성귀 생각을 해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자연 친화적인 방법을 찾아보자는 일념으로 한동안 골몰했다.

‘나무 둘레에 테이프를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방법은 간단하다. 줄기에 간격을 두고 넓적한 포장용 테이프를 감는 것이다. 물론 끈끈한 접착제 부분이 바깥으로 향하게 감는다. 진딧물에 앞서 개미를 잡기 위해서다. 알다시피 진딧물과 개미는 상리공생(相利共生) 관계다. 개미는 진딧물의 꽁무니에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당분을 섭취하고 진딧물은 무당벌레 등 천적의 공격에 대해 개미의 보호를 받고 이동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테이프 구제법’은 테이프라는 장애물로 둘 사이의 접촉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개미의 왕래가 끊기면 진딧물들은 혼란에 빠진다. 개미를 찾아 나서려는 것일까? 진딧물들이 한꺼번에 줄기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얼마 뒤 무수한 진딧물이 죽어 테이프에 쌓인 것을 볼 수 있다. 진딧물은 스스로 옮겨 다니지 못한다고 아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테이프를 자주 갈아 붙여야 하는 번거로움을 귀찮게 여기지만 않는다면 ‘테이프법’은 진딧물 퇴치에 매우 효력이 있다. 가을이 돼도 열매가 거의 없이 추레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이웃 모과나무들이 안쓰럽다. 내년 봄엔 이 방법을 널리 이웃에 알려줄 참이다.

이덕림 ‘춘천학 공부모임’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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