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감동 정치’를 하려면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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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집권 3년째를 맞아 국정운영 기조를 새롭게 설정할 것이라는 보도에 내년엔 정치판이 이래저래 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정기조 변화에는 민생, 통합, 화해가 강조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판 뒤집기’ ‘껴안기’ 같은 말도 이어 떠오른다. 집권세력에선 국정기조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초점이 달리 맞춰지는 것이고, 대통령의 합리적 실용주의의 연장이라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벌여 온 혁명적 개혁도 미리 설명하고 국민적 동의를 구했던 것이 아니잖은가. 문제는 민심이 믿고 기다려 주느냐에 있다.

▼‘돌아봐야 앞이 보인다’▼

그렇다면 지난 2년간의 국정운영에 대한 겸허한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 계획대로 잘돼 왔지만 상황 논리에 따라 궤도를 수정한다는 말은 누가 봐도 옹색하다. 차라리 국정 난조와 시행착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 민심을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야 새로운 신뢰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감동의 정치’다. 정말로 새판을 벌이겠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주미대사 발탁은 ‘껴안기’의 대표적 실례다. 한 달 이상 지루하게 벌어지고 있는 여야의 대치 정국에 피곤해진 국민의 시선을 바꿔 놓은, 분명 의외의 장면이다. 홍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을 ‘언론 사주의 정치입문’이란 점에서 보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유력 언론사의 대주주를 선택한 것은 파격적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일순간에 분위기를 바꾸고, 새로운 상황을 설정하는 권력의 힘이다. 나는 이것을 ‘반전(反轉)의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최후의 역전 골 한 방으로 승부를 뒤집는 운동경기나 대단원에서 역전 상황이 벌어지는 드라마의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다. 권력의 힘은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국정기조 변화라는 것도 ‘반전 정치’의 범주에 속한다.

그렇다면 왜, 이제 국정운영을 달리해야 한단 말인가. 그 이유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현 정권의 지금까지의 궤적을 돌아보라. 정권의 상징어가 ‘코드’가 될 정도로 지금처럼 피아(彼我)를 가르고 사회를 양분한 정권은 없었다. 집권 초부터 사회주류를 바꿔 버리겠다는 공언의 결과는 지금 과연 어떠한가. 결국 곳곳에서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정권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시민혁명의 촉구는 사회 전체에 깊은 상처를 낸 자해행위였던 셈이 아닌가. 그래서 이룬 국정의 성과는 또 무엇인가. 외교안보가 튼튼해졌는가. 한국외교가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우려가 왜 나오는가. 과연 한국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파트너의 위치에 있는지를 외교 당국자들이 자문해 보면 알 일이다. 백성의 살림살이는 나아졌는가.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가계소득은 늘지 않는 가운데 세금 부담은 늘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집권세력 안에서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다투는 동안 청년실업은 7%대를 웃돌고 있으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인가. 지금 일부 집권세력을 빼놓고 이곳저곳에서 국민의 불만은 목 끝에까지 차올랐다. 집권세력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절박감과 중압감 속에서 반전의 탈출구가 절실했던 것 아닌가.

▼실적 없으면 되레 악화▼

‘반전의 정치’는 일순간 감동을 주고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권력의 입맛에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엔 함정도 있다. 순간적인 만큼 그 효과도 순간적이란 점이다. 실적은 없이 포장만 바꾼다고 해서 감동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반전 기술이 아니라 돌아선 민심을 정성스레 되돌리는 일이다. 정치적 수사(修辭)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때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 분명한 기준은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도 변화 예고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다. 내년엔 여야 모두 전당대회와 리더십을 둘러싼 반전의 요인을 안고 있다. 대통령의 ‘껴안기’를 보면서 대안세력을 자임한다는 한나라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강 건너 불인가. 가출했던 ‘민생’과 ‘통합’이 돌아온다고 하니 반갑기도 하지만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착잡하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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