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신문법과 ‘돈 몽둥이’

  • 입력 2004년 11월 24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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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경제정책을 ‘반시장적, 좌파적’이라고 비판했던 최광 국회예산정책처장을 면직처리한 집권 여당은 앓던 이를 뽑아냈다고 시원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다. 집권세력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냈고, 말만 해 오던 상생정치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입증했기 때문이다. 힘으로 밀어붙인 이번 ‘사건’으로 집권세력은 입법부를 얕보고 있음을 공언한 셈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쫓기듯 쫓아냄으로써 ‘비판’에 대해 얼마나 취약한 정권인지를 역(逆)으로 보여 줬다.

▼장기집권 걸림돌 제거▼

같은 맥락에서 ‘비판’에 생래적 혐오증을 보인 이상체질의 집권세력이 파탄민생까지 내치면서 비판 언론을 잡겠다고 서둘러 만든 것이 속칭 ‘신문법’이다.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신문 등의 기능 보장 및 독자의 권익 보호에 관한 법률’로 바꾸었으니 이름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비판 언론을 압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신문 기능 보장이니, 독자 보호니 하는 것은 포장용일 뿐 내심의 정치적 의도는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자는 것 아닌가. 반대 의견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밀어붙이는 것은 정권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무엇이 있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재갈을 물린 후 노리는 정치적 목표는 무엇인가.

신문법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벌어진 경우가 과거에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윤리위원회법’(1964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기본법’(1980년)에 이어 노무현 정권의 ‘신문법’이 세 번째다. 반듯한 나라에는 예가 없는, 언론자유를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이 공통분모다. 정통성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거나, 집권 기반이 취약한 정권이라는 데에도 유사점이 있다. 결국 감출 수 없는 공통의 정치적 목표는 장기집권이다. ‘20년 집권’이니, ‘100년 정당’이니 하는 말엔 이미 씨가 있었다. 역대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퇴임 후 신변 안전이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국민적 지지 없이 정권 연장이 가능하겠는가. 민심의 지지가 없었던 군사정권은 강압적 수단으로 버티다가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렇다면 현 집권세력이 20%대의 낮은 지지율로 정권 연장을 꾀하는 것은 과신인가. 무모함인가. 그뿐 아니다. 최근 출범한 ‘기독교사회책임’과 ‘자유주의연대’는 한국사회를 ‘위기’로 규정했다. ‘기독교사회책임’은 경제피폐, 국론분열, 이념적 양극화를 열거했고 ‘자유주의연대’는 국가 정통성의 훼손을 지적했다. 위기 국정의 연장을 얼마나 많은 국민이 바란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신문법’이 무리수라는 것도 모를 리 없다.

장기집권을 노리며 반대 세력과 비판 언론을 무참히 짓밟았던 유신정권 ‘긴급조치 9호’(1975년 5월)의 망령이 지금 다시 떠돈다. 유신정권이 끝날 때까지 5년 7개월간 530여명이 구속됐다. 당시 중앙정보부 밀실의 ‘몽둥이’가 앞장섰다. 배겨 낼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30년 만에 나타난 ‘신문법’을 보면 몽둥이 못지않은 ‘도구’가 여기저기 숨어 있다.

▼긴급조치 9호의 망령▼

건전한 언론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해괴한 조항을 내걸고 위반하면 부과하겠다는 2000만원 균일의 ‘과태료 벌칙’이다. 여기에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조법안’에서는 손해배상 중재권도 신설해 그 액수가 얼마나 될지도 모를 ‘상당한 손해배상액’을 규정했다. 신문경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정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몽둥이는 남의 눈도 있고 하니, 남모르게 목을 죄는 데는 ‘돈 몽둥이’가 제일이라고 생각한 것 아닌가. 경영 압박을 통해 알게 모르게 비판 기능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다. 긴급조치의 목적이 언론의 백지화였다면 신문법의 목적은 획일화이다. 이래저래 언론 죽이기는 마찬가지다. 후자가 더 교활하다. 그러나 최 처장 사건도 그렇듯이, 비판 무력화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도 ‘세무조사’란 칼을 들이댔었다.

정작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언론계 현실이다. 지난날엔 권력이 억누를 때마다 모든 언론매체가 힘을 합쳤다. 이젠 매체끼리도 갈라섰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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