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고구려사 왜곡의 망령

  • 입력 2004년 8월 18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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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벌이고 있는 ‘고구려사 왜곡’은 말이 왜곡이지 따지고 보면 ‘고구려사 없애기’다.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지안(集安)의 기념관 안내문에 버젓이 고구려를 중국의 속국으로 기술한 것이나,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아예 고구려 부분을 삭제해 버린 것이 실례다. 중국이 아무리 고구려사를 지우려 해도 당(唐) 태종을 안시성에서 물리친 양만춘 장군이 남긴 장엄한 역사의 기록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고구려사를 없애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것으로 중국은 패권주의, 제국주의란 명예스럽지 못한 소리를 듣게 됐고, ‘중화(中禍)론’까지 나오는 형편이 됐다.

▼오만의 뿌리 오늘까지▼

‘중국의 의도가 무엇이냐’를 따지기 전에 우선 불쾌한 대목이 있다. 역사를 뒤틀어 놓겠다면서 한국의 반발이 없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반발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 것인가. 한마디로 우습게 본다는 뜻 아닌가. 역사를 자기 뜻대로 주무르겠다는 중국의 오만 자체가 한국인에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옛일을 새삼 들추어낸다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이것도 뭉갤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고구려로 돌아갈 것도 없다. 우리 근대사의 격변기였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치면서 12년 동안 청(淸)군을 이끌고 진주했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안하무인격 횡포는 지금도 상상을 절한다.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란 기괴한 직책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조정을 쥐락펴락했고 고종의 폐위까지 주장했던 방자한 행동을 역사의 기록은 전해주고 있다. 그가 우리 땅을 밟을 때 나이는 불과 24세였다. 1880년대는 조선이 구미 제국과 개국협상을 한창 벌이던 시기였다. 여기에 반드시 끼어든 것이 청나라다. 1882년 미국과의 수교협상에서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수교조약문에 조선은 청의 종속국이란 점을 명기해야 한다고 청나라 이홍장(李鴻章)은 완강히 주장했다. 종속국과는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반대한 것은 미국측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조약문에서 종속국 조항은 빼기로 하되 그러한 내용을 조선 국왕이 미국 대통령에게 별도 서한 형식으로 전달한다는 선에서 마무리되긴 했으나 이것 역시 이홍장의 꾀였다. 이쯤 되면 ‘종속국 왜곡’의 오만한 뿌리가 어떤지 알 만하지 않은가.

그래서인가. 주한 중국대사관은 3월 대만 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가지 말라’ 했고, 다녀온 의원들에겐 ‘기억하겠다’고 했다. 한국 국회의원이 중국대사관의 허락을 받고 움직여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무례를 넘어 협박이요, 내정 간섭이다. 그리고 툭하면 입국비자 발급을 외교적 압박카드로 꺼내드는 것도 상식 이하다. 100여년 전 위안스카이와 이홍장이 되살아났단 말인가. 새로운 미래를 지향한다는 오늘에 과연 있을 법한 일인가. 한중수교 이후 12년 동안 양국간 교류협력이 수치상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우리는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본심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중국 가서 망하는 법’이란 책에서 저자 손석복씨는 ‘중국을 모르면서 너무 깊이 들어간 것’을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여기서 집권여당 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특히 역점을 둬야 할 외교통상의 상대로 미국보다 중국을 3배 가까이 더 선택한 의원들에 대해서다. 개혁을 표방하겠다면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본격적인 개혁의 싹이 잘리게 된 배후엔 중국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역사전쟁 국제화 필요▼

고구려사 역사전쟁은 쉽게 결말지어질 일이 아니다. 우리가 보존하는 고구려 역사를 중국이 빼앗아 갈 수 없듯이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중국이 의도를 접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역사전쟁을 국제화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경기를 개최하고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면서 대국을 지향한다는 중국이 어떻게 역사를 휘저으려 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 역사적 진실에 신뢰가 쌓이는 법이다. 국제적 신뢰를 얻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이 역사 왜곡을 계속할수록 위안스카이와 이홍장의 망령은 되살아날 뿐이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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