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 칼럼]미군 감축과 ‘북핵 이후’

  • 입력 2004년 5월 2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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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은 한미관계의 커다란 변화요, 중대한 방향선회다. 지금 분위기로는 이라크에 갔던 미군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듯이 동맹관계도 예전 궤도로는 돌아갈 것 같지 않다. 미군 감축은 세계전략에 따른 것이고, 지상군보다는 기동타격전술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을 북한보다 더 군사적 위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한국 사회, 미국보다 중국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초선의원들이 많아진 한국 국회, 촛불시위로 대변되는 반미감정이 확산되는 한국 여론에 미국이 섬뜩해진 것이다. 특히 한미동맹에 앞서 남북한 민족공조를 내세우는 한국 지도부에 놀랐을 것이다. 정치 외교 군사 경제 과학기술에서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놀라게 한 한국의 변화가 놀랍다. 미국이 주한미군 일부를 이라크로 빼돌린다고 전격 통보한 배경엔 실망감뿐 아니라 뒤틀린 심사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 조야의 ‘한국은 과연 미국의 동맹인가’라는 물음의 뜻이 분명해진다.

▼‘자주국방’전략 있는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미국 쪽에서 볼 때 한미관계의 우선순위는 우리 생각만큼 높지 않다. 세계전략의 한 부분이고, 미국의 국익 순위에서 한국은 앞쪽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뭐라 하든지 그것은 미국의 선택이다. 그래서 반미 분위기와 어울려 그 대척점에 내세운 것이 현 정권의 자주외교, 자주국방 아닌가. 민족공조를 줄기차게 외쳐온 북한이 이런 호재를 대미, 대남정책에 활용하지 않을 리 없다. 이미 위도(緯度)에서 현격한 고저 차와 경도(經度)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한미관계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 여기서 당장 걸리는 것이 북핵 6자회담이다. 지금 기류가 앞으로의 6자회담엔 물론, 극적인 상황을 포함해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매듭지어질 북핵 이후 한반도 정세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협력적 자주국방’의 구체적 실천내용이 무엇인지 애매한 것도 문제이지만, 몸통이 달라지면 이를 받쳐줄 전술전략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줄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렇지 않고서야 관련부처가 안보외교 골간이 달라지는 결정적 시점에서 ‘안보에 이상이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 있겠는가. 자주외교, 국방이란 것도 미국이 상대로 있을 때 그 나름의 소리를 낼 여지가 있는 것인데, 미국이 고개를 돌리고 빠지려 한다면 누구를 상대로 자주외교요 국방인가. 북한은 아닐 테고, 그럼 중국인가 일본인가. 엄청난 비용도 문제지만 방향이 궁금하다. 과연 복안은 있는가.

6자회담도 10년 전 북-미 제네바합의 때와는 기본구도가 다르다. 회담 참가국끼리도 솔직히 말해 믿을 만한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회담은 열리지만 미국이 주장하는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 기준에 (북한은 차치하고) 참가국간에도 합의가 안 된 상태다. 6자회담 해결방식이 복잡해질수록 자주국방의 길은 험하다. 자주를 외친다고 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잖은가. 더욱이 일본 중국 러시아가 미군 감축의 전후 사정을 어떻게 풀이하고 대해 올 것인지도 미지수요 변수다. 당장 한국과의 관계를 그들이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주국방론이 여기까지 염두에 뒀을까.

▼4강 움직임 직시해야▼

정작 문제는 ‘북핵 이후’다. 4강은 이미 북핵 이후 한반도의 세력 균형, 나아가 영향력 지분을 계산에 넣고 있지 않겠는가.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왜 북한을 드나든다고 보는가. 중국이 회담 주선만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나섰겠는가. 미국은 뒷짐만 지고 있겠는가. 이미 징후가 나타났듯이 동맹의 틀이 변한다면 미국이 북한과 손을 잡을 이유는 없겠는가. 그때 충격은 감당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미군 감축, 6자회담, ‘북핵 이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간다는 점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구한말의 수모와 고통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자주를 내세운다면 미군 감축 파장과 6자회담 관계, 그리고 ‘북핵 이후’에 밀려올 먹구름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단추를 조심스럽게 끼워야 한다. 과연 그런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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