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친람하는 지자체장… 정말 재선, 삼선 가능할까[광화문에서/이유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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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사회부 차장
이유종 사회부 차장
요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을 만나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지자체장이 너무 자잘한 사안까지 챙기려고 든다.” 임금이 온갖 정사를 친히 살핀다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지자체장이 많다는 이야기다. 공무원이나 기업인 출신 단체장 정도만 ‘관성의 법칙’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일 것 같은데, 의원 보좌관이나 교수, 시민단체 활동가 등 출신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자잘한 사안까지 챙기려고 한단다.

왜 그럴까. 지자체장들이 자잘한 사안까지 간섭하는 이유는 일단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이다.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연임할 수 있는데, 무엇을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실제로는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주민’과 관련된 자잘한 행사, 정책 등을 모두 직접 챙긴다. 주민이 표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자체장은 주민을 살뜰히 챙겨야 한다. 하지만 업무 규정을 넘어 과도하게 한다면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업무 결재는 대체로 지자체 규정에 따라 적정 직급이 전결로 처리한다. 도시계획, 교통 등 어지간히 큰 사안이 아니면 지자체장들이 결재할 사안은 많지 않다. 현실에선 지자체장이 과장, 국장, 부지자체장이 처리할 소규모 주차장이나 공원 개설에도 일일이 개입할 때가 많다. 재선 지자체장은 업무 자신감까지 붙어 더 자잘한 사안에 몰입한다. 직원들은 세세한 사업까지 챙기는 지자체장에게 핀잔을 듣지 않으려고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하지 않게 된다. ‘오더’만 거슬리지 않게 잘 처리하려고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열심히 일한 지자체장은 선거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까.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와야 하는데, 실상은 꼭 그렇지 않다. 유권자들은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솔직히 알 길이 없다. 그저 자주 마주치는 친근한 지자체장으로 떠올리겠지만 변화와 혁신을 일궈낸 행정가로 기억할 것 같지는 않다. 한 지자체장은 한 차례 낙선한 덕에 4선까지 했는데도 정작 그가 무엇을 남겼는지 기억하는 주민은 드물었다. 동네 행사에만 얼굴을 내밀다 뚜렷한 성과 없이 16년이 지나갔다.

다음 선거에서 이기려면 임기 중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 대표 상품 한두 가지에 몰입하는 게 낫다. ‘걷는 도시’를 대표 브랜드로 정했다면 대중교통은 지하로 내리고 지상 차도는 절반으로 줄이며 인도를 대폭 늘리면 된다. ‘문화 공간’이 부족하다면 잉여 시설을 찾고 문화 소프트웨어가 이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물론 꾸준히 추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바꾸는 정책을 펴면 유권자들은 이를 주도한 지자체장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탁월한 행정가들도 대체로 이런 지자체장들이다.

“메뉴 줄이세유.” 골목상권을 살리려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의 처방책은 매우 간단하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을 파는 백반집에서 한두 가지 메뉴를 빼고는 모두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효율성이다. 장사가 잘되지 않는 가게 주인들은 요리 솜씨가 빼어나지 않을 때가 많다. 메뉴가 많으면 재료 관리가 어렵고 조리 속도도 느리다. 결국 선택과 집중을 하라고 조언한다.
 
이유종 사회부 차장 pen@donga.com
#지방자치단체#지자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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