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를 원한다면 과감한 규제혁신이 먼저다[광화문에서/신수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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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2부 차장
신수정 산업2부 차장
지난달 30일,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들 150여 명이 참석한 경영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비상경영 체제로의 전환을 주문했다. 황 부회장은 “투자의 적절성을 철저히 분석해 집행해야 한다”며 “향후 발생 가능한 외환 및 유동성 위기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잇달아 위기론을 강조하며 조직원들에게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올 9월 “지정학적 리스크가 앞으로 30년은 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1일에도 “미중 무역갈등을 비롯한 여러 지정학적 이슈가 전례 없는 리스크를 만들고 있다”며 “이러한 불안정이 세계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저성장 기조가 길어질 것이라며 앞으로 몇 년이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되는 각종 통계와 경제지표들은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잘 보여준다. 지난달 국내 소비는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3분기(7∼9월) 건설투자는 전 분기 대비 5.2%나 줄면서 3분기 성장률은 0.4%에 그쳤다. 소비 부진에 기업들의 실적 전망까지 어두워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낮춰 1%대로 제시한 곳들도 많다.

지정학적인 리스크와 미중 무역분쟁처럼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움츠러든 기업 투자를 활성화할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정부도 해답을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에 열린 경제관계회의에서 “기업 투자를 지원하고 규제 혁신에 속도를 내는 등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문한 규제 혁신이 현장에서는 도통 느껴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상법, 자본시장법 등에서 재계에서 반대하는 각종 규제들이 국회를 거치지 않고 각종 시행령을 통해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가 줄기차게 보완을 요구해온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 유연근로제 도입,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환경 규제 완화 등과 관련해서도 실질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규제 완화를 언급할 때마다 기대를 가졌는데 실제로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CEO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리스크도 기업가정신을 위축시켜 투자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좌담회에서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CEO에게 사업주 형사처벌 법안은 큰 위험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어느 때보다 기업들에 투자할 의욕을 불어넣어주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고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을 늘려 경기침체에 대응해야 한다. 기업에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하면서 규제를 강화하는 엇박자로는 다가오는 긴 겨울을 버텨낼 수 없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
#기업 투자#규제혁신#규제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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