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부국’ 과시해 온 美, 돈만 챙기면 동맹 빈국 돼[광화문에서/이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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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미국은 ‘동맹 부국(富國)’이지만 러시아와 중국, 북한 같은 나라는 ‘동맹 빈국(貧國)’이지 않습니까.”

미 국방부 2인자인 데이비드 노퀴스트 국방부 부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던 7월. 댄 설리번 상원의원(공화당)의 발언은 당시 기자의 귀에 가장 인상적으로 꽂힌 문장이었다. 자원 부국이나 에너지 부국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동맹 부국이라니….

설리번 의원은 미국과 한국, 미국과 일본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언급하면서 “만약 협상에 실패해 미군이 철수하면 러시아와 중국, 북한에 좋은 게 아니냐”고 물었다. 노퀴스트 후보자는 “그럴 것”이라며 “미국에는 있지만 그들 국가에는 없는 한 가지는 바로 동맹과 파트너들”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 그에게 “동맹의 강화와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설리번 의원의 당부에서 ‘어벤저스’ 같은 동맹국들과 손잡은 미국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미국이 상호방위조약 혹은 국제 조약을 통해 동맹 및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70개 가까이 된다. 핵무기 개발이나 전쟁 위협뿐 아니라 환경, 에너지, 빈곤 문제 등 전 세계가 직면한 도전에 맞서 미국이 힘을 합칠 수 있는 든든한 우군이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글로벌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개입하는 수많은 국제 현안에는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일들이 많다.

‘동맹 부국’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른 것은 동맹을 폄하하는 듯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발언을 접하면서다. “동맹이 우리를 더 이용한다” “동맹이 더 나쁘다”는 그의 ‘동맹 때리기’ 빈도와 수위는 점점 높아지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기존의 5배에 이르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은 물론 북한과의 협상에서 ‘완전한 돈 낭비’라고 깎아내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영구히 중단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진다. 동맹을 외교안보 핵심 자원으로 여기는 국가의 태도로 보기도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 의회나 정치권에서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부 실무자들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사석에서 만났던 외교안보 분야의 한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곧바로 정책이 된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무선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군사 분야에서 매일 긴밀하게 이뤄지는 한미 간 소통만 봐도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동맹인지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이들은 동북아의 핵심 두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갈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지난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로버트 메넨데스 상원의원이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차관보에게 “중국의 위협 등에 맞서기 위해 미국이 한일 양국 간 관계 개선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느냐”고 질문한 것도 이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번 주부터 유엔총회를 계기로 미국이 진행하는 정상회담들은 동맹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과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민감한 동맹 이슈들을 의제로 올리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다른 나라들에도 파장을 미칠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동맹들을 실망시키는 결과가 반복된다면 미국이 ‘동맹 빈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동맹 부국#동맹 빈국#방위비 분담금 협상#미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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