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에 밀려 재기 실패한 옛 부동산 황제 센 마사오[광화문에서/박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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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한국 소비자물가가 지난달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일본 유명 가수 센 마사오(千昌夫·72)가 떠올랐다.

그는 1947년 동북부 도호쿠 지방의 벽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교 2학년 때 가출해 무작정 도쿄로 갔다. 일면식도 없는 작곡가 엔도 미노루(遠藤實)를 찾아 문하생으로 받아달라고 졸랐다. 그를 기특하게 여긴 엔도는 이를 수락했다. 19세인 1966년 내놓은 ‘별빛의 왈츠’가 대히트를 쳤다. 유명인이 된 그는 1970년 도호쿠의 거점 도시인 센다이(仙臺)에서 토지를 샀다.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A건물을 사고, A건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 B주택을 샀다. 1980년대 거품경제 시기 부동산 가치가 끝없이 오르면서 그는 ‘부동산 황제’가 됐다. 자산만 약 3000억 엔(약 3조247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 자산의 대부분은 은행 빚이었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폭발했다. 그의 자산 가치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지만 보유 부동산을 처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센이 소유한 부동산회사는 2000년 1034억 엔의 빚을 안은 채 파산했다. 당시 그는 한 방송에서 “하루 이자만 5000만 엔을 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파산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리 해 봤을까. 부동산을 사기만 하면 가격이 오르던 경험만 했기에 ‘조금만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급락한 일본 부동산 가격은 2000년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센은 부동산업으로 재기하지 못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인들 가운데 부동산을 재산 증식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저서 ‘불황 탈출’에서 일본 부동산이 반등하지 못한 주요 이유로 ‘디플레이션’을 꼽았다. 일본은 1999년 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약 7년간 유례없는 장기 디플레를 겪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 2월부터 2013년 5월까지도 디플레였다. 내일이면 값이 더 떨어지는데 오늘 부동산을 살 사람이 있을까.

디플레는 지금도 일본인의 삶을 옥죄고 있다. 근로자의 월급이 어지간해선 오르지 않는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2018년 일본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1997년보다 8.2%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하락했다. 디플레로 소비자들이 상품 구매를 미루자 기업 수익도 악화됐다. 기업은 임금 인상을 미루거나 비정규직을 고용하며 대응해왔다.

많은 기업은 생산 단가를 맞추지 못해 해외 저가제품 수입을 늘렸다. 일본 제조업 기반도 약해졌다. 정부는 디플레를 막기 위해 각종 재정 및 금융정책으로 시장에 돈을 쏟아부었다. 2017년 기준 일본의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의 234%로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하고 있다. 디플레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13년부터 무한정 돈을 풀었지만 아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만큼 디플레는 힘든 경제 환경을 만든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한국 소비자물가#불황 탈출#일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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