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적 적대감만으론 홍콩 문제 해결 어렵다[광화문에서/윤완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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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홍콩국제공항에서 폭행당한) 본토인의 현재 상황은? 생명의 안위는 어떤가? 퇴원했나? 본토로 돌아왔나? 아직 사람들이 관심이 있나?”

중국 본토에 주재하는 홍콩 매체 소속 기자 A 씨가 19일 중국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 이처럼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광둥(廣東)성 선전(深(수,천))시 출신으로만 알려진 쉬(徐)모 씨는 13일 홍콩공항을 점거한 시위대로부터 공안(중국 본토 경찰)이라는 의심을 받고 감금된 채 폭행당했다. 중국은 시위대의 행위를 “테러리스트와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도 시위대가 공안이라고 주장한 쉬 씨의 신분에 대해 중국 정부나 관영매체 모두 조용하다. 그가 홍콩공항에 사람을 마중 나왔다가 폭행당했다고만 밝혔을 뿐이다. 중국이 이날 함께 폭행당한 중국 환추(環球)시보 기자 푸궈하오(付國豪) 씨의 실명을 공개하고 영웅 대접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A 기자의 문제 제기에 20일 “알고 싶지만 감히 묻지 못한다”는 풍자적 댓글이 올라왔다. “그가 정말 공안이어서 보도가 많지 않다”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A) 기자가 홍콩 독립을 지지한다”는 비난 글도 올라왔다. 이에 A 기자는 “내 글 어디에 홍콩 독립이 있느냐”며 반박했다.

A 기자는 앞서 푸궈하오 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홍콩 기자의 글을 올렸다. 시위대가 푸 씨에게 기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여행객”이라고 말한 점 등이 석연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중국 누리꾼들은 A 기자가 시위대의 폭력을 용인한다며 “괴상하게 사람을 실망시키네.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 18일엔 관영 중국중앙(CC)TV까지 푸 씨를 집중 인터뷰하고 치켜세우면서 중국에선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홍콩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데 날이 서 있다. 폭력을 비판하면서도 중국 본토인들이 홍콩에서 시위대를 폭행한 백색테러 의혹에 대한 보도는 찾기 어렵다. 시위대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가짜뉴스를 퍼뜨린 사실도 드러났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홍콩 시위를 겨냥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직적으로 허위 정보전을 펼친 계정들을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자주 교류하는 베이징의 한 30대 중국인이 최근 이런 얘기를 했다. “내 결론은 홍콩 시위에 대해 외국인들과 중국인의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그리고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은 다 똑같다는 것이다.”

중국 측 인사들은 “중국에 안정이 가장 중요하며 혼란은 40년의 개혁개방으로 성취한 중국의 오늘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체제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중국인의 우려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홍콩 시위를 반대하면 ‘우리 편’, 시위를 이해하거나 지지하면 퇴치해야 할 중국의 ‘적대 세력’이라는 이분법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홍콩 시위대 일부에서도 이런 적대감이 감지된다. 경직된 이분법으로 적대감을 부추기고 편 가르기에 나서면 홍콩 사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상황만 악화된다는 걸 깨달을 때가 바로 지금인 듯하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홍콩국제공항#홍콩시위#백색테러 의혹#가짜뉴스#공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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