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에 최초 진출한 장애인, 이들이 바꿔나갈 일본 사회[광화문에서/박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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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그의 이름은 후나고 야스히코(船後靖彦·62). 도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무역회사에 입사해 ‘상사맨’으로 일했다. 평범하고도 무난한 삶이었다. 42세가 되던 1999년 여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때부터 손에 힘이 없어지면서 젓가락, 칫솔 등을 제대로 쥘 수 없었다. 급기야 다음 해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2002년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했고, 위에 구멍을 뚫고 관으로 연결해 영양분을 섭취했다. 2008년에는 손가락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의 생활방식은 지금도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2012년 간호 서비스 사업을 하는 주식회사 ‘어스’에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로 센서를 물어 컴퓨터 문서 작업을 했다. 올해 ‘행복한 왕’이라는 책도 냈다. 그는 특수 제작된 전기기타에 센서를 연결하고 이로 조작해 연주한다. 공연단과 함께 무대에 섰던 그는 ‘전신마비 기타리스트’라고도 불린다.

그녀의 이름은 기무라 에이코(木村英子·54). 생후 8개월 때 보행기에서 떨어져 경추를 다치면서 중증 전신장애를 입었다.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게 됐는데, 다행히 오른손과 목 윗부분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전동 휠체어를 조종하면서 행동반경을 넓혀나갔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고향인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만 살았다. 가족과 간호시설의 도움에 의존했다. 하지만 19세가 되던 1984년 고교를 졸업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도쿄로 옮긴 뒤엔 홀로 살고 있다. 29세 되던 해 ‘자립 스테이션 쓰바사’를 설립해 장애인 자립을 지원하는 일을 해 왔다.

두 사람은 21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면서 연일 각광을 받고 있다. 중증 장애인이 의원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성 정당의 전략 공천을 받은 건 아니다. 두 사람이 소속된 곳은 올해 4월 창립된 신생 정치단체 ‘레이와신센구미(れいわ新選組)’. 공천자 10명 가운데 사회적 약자 배려로 공천된 두 사람이 당선됐다. 참의원 선거에서 득표율 4.55%를 올리며 정당 요건(득표율 2% 이상 혹은 국회의원 5명 이상)을 갖춰 정식 정당이 됐다. 일본 정치계의 필수 3요소인 ‘지반(지원조직), 가방(자금), 간판(지명도)’ 중 어느 것도 갖추지 않은 신생 단체 돌풍이 분 것이다.

일본 국회의사당은 다음 달 1일 임시국회 소집을 앞두고 한창 공사를 벌이고 있다. 의원 3명이 앉던 책상을 개조해 2명용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중앙 현관에 새 슬로프도 설치하고, 다목적 화장실도 늘린다. 의원회관 내 사무실은 이용하기 편한 아래층에 배정했다.

두 의원의 의회 진출로 일본 사회에서 그동안 가려졌던 곳에 조용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두 의원의 존재만으로 장애인들은 큰 힘을 얻고 있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온다 사토시(恩田聖敬) 전 FC기후 사장은 “국회가 어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고령자나 장애인을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애물을 허무는 것)를 해 나갈지 기대된다”고 일본 언론에 말했다. 두 사람의 의회 진출을 계기로 일본 사회에 ‘배려심’이 더 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사회#일본 국회의사당#장애인#일본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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