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되지 않는 형벌… 사형제 존폐 고민해봐야[광화문에서/이종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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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사회부 차장
이종석 사회부 차장
“사형 선고한 적 있습니까?”

오랜만에 통화한 판사에게 안부 인사로 뜸을 들이다 물었다. 고민한 적이 있지만 실제로 선고한 적은 없다고 했다. 20년 넘게 법관으로 일하고 있는 이분은 고민했던 이유를 몇 가지 댔는데 끄트머리에 가서는 “사실상 실효가 없어서…”라고 했다. 사형을 선고해도 집행이 되지 않으니 형벌로서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일주일 전 본보는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20년간 복역하던 70대 사형수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기사에 2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사형제를 지지하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표현은 거칠었다. 같은 내용을 보도한 다른 매체 기사엔 “사형수가 병사(病死)할 때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법무부 장관을 직무유기로 처벌해야 한다”는 댓글도 있었다. 형사소송법상 ‘사형 집행 명령권자인 법무부 장관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집행을 명령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안 지킨 지 오래됐다. 김창석 전 대법관은 2016년 재임 당시 사형이 확정되는 판결에 반대의견을 낼 때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우리나라 사형제도는 사실상 실효성을 상실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사형수 23명을 교수형에 처한 뒤로 사형을 집행한 적이 없다. 그래서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본다. 통화를 했던 판사의 말마따나 집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영향을 미친 것인지 최근엔 사형 선고 자체가 줄었다. 2015∼2017년 3년간 1심 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한 번도 없었다. 2008∼2014년 7년간은 해마다 적게는 1건, 많으면 6건의 사형 선고가 있었다.

실효성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사형제가 존재하는 이상 집행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선고를 피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2015년 8월 대법원 1부는 사형 판결을 확정하면서 “사형 선고의 실효성 자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사형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도 국회에 발의돼 있다”면서도 “현행 법제상 사형제도가 있고 합헌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상 사형이 규정돼 있는 범죄에 대해 최고형을 선고해야 할 경우에는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사형제 존폐를 둘러싼 논쟁은 오래된 일이다. ‘있어야 한다’는 쪽이나, ‘없애야 한다’는 쪽이나 가치관에 가까워 보이는 논리를 앞세워 다투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는다. ‘있어야 한다’는 쪽은 범죄 예방을 통한 시민의 생명 보호와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앞세워 강조한다. ‘없애야 한다’는 쪽은 인권을 강조해 국가가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할 권한은 없다고 주장한다. 사형제가 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실제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부인할 수 없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형제 폐지 국가가 늘고 있다. 사형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의 집행률은 낮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형제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집행마저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으면서 실효성이 거의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형제의 존폐를 고민해 봐야 할 때가 됐다.
 
이종석 사회부 차장 wing@donga.com
#사형수#사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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