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와 전염병의 공통점[동아광장/하준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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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행 끝나면 수그러드는 질병처럼 투기 여력 소진되면 거품도 사라져
부동산은 계속 오른다? 사실과 달라… 서울 집값 급등, 경기 남부로 확산
규제 빈틈 메우고 임대주택 늘려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투기 붐’은 전염병과 비슷하다. 급속히 확산되다가도 어느 순간 기세가 꺾인다. 그럼 투기 거품이 언제 잦아들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답은 없지만 누가 자산을 사기 시작했는지 보면 조금이나마 감이 온다. 주위를 보면 경제학 교수나 기자들이 거품 절정기에 자산을 사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이들이 초창기에 뛰어드는 일은 드물다. 왜 그럴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는 투기 거품을 ‘사회적 전염병(social epidemic)’이라고 하면서 불완전한 정보가 사회심리와 결합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즉, 가격 상승 ‘뉴스’가 투자 열기를 자극하는데, 그 열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심리적 전염 작용을 일으킨다. 이 과정은 가격 상승을 정당화하는 ‘스토리’들을 실제보다 증폭시키면서 자산의 진정한 가치가 그렇게 높은지 의심해온 사람들까지도 끌어들인다. 이때 성공에 대한 부러움과 투기적 흥분이 일부 작용한다.

교수나 기자는 대체로 거품을 정당화하는 스토리들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 그러나 거품이 오래 지속되면 이들도 이 스토리들이 정말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고, 어느 순간 “이번은 다르다. 새로운 시대다. 늦었지만 지금 아니면 영영 못 들어간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투기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때가 대개 끝물이다.

부동산과 관련해서 실러는 가장 매력적으로 전염되지만 명백히 틀린 믿음이 바로 ‘토지는 한정돼 있는데 인구 압력과 경제 성장은 불가피하므로 부동산 가격은 항상 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이 주장은 집값 급등기에만 설득력이 있고 실제론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는 투기를 분석할 때 전염병학, 사회심리학, 미디어학 등을 접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전염병학 또는 역학(疫學)은 투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인구를 아직 병에 감염되지 않은 미(未)감염 그룹과 감염 그룹, 그리고 회복 그룹으로 나눠 보자. 새로 감염돼 감염 그룹으로 들어가는 사람 수와 거기서 빠져나오는 사람 수를 비교해 보면, 반드시 어느 시점에 신규 감염자 수가 더 작아지게 돼 있다. 전염병이 퍼져 감염 그룹이 커질수록 미감염 그룹은 작아져 주변에 추가로 감염시킬 취약자 수가 줄기 때문이다. 신규 감염자 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기존 감염자가 회복되거나 사망해 빠져나오면 전염병은 잦아든다.

이를 투기에 적용해 보자. 투기 붐이 지속되면 투기 참가자는 늘어나는 반면 대기자는 줄어든다. 붐이 지속되려면 돈을 빌려 투기판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줘야 하는데, 대중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기에 참여하고 수도승 같은 이들까지 다 들어오고 나면 추가로 들어올 사람이 줄어 투기가 잦아든다.

물론 전염병 중엔 감기처럼 회복 후에도 면역력이 생기지 않아 다시 감염되는 것들도 있다. 이 경우엔 인구의 일정 비율이 항상 감염돼 있는 식으로 균형이 형성된다. 투기의 경우에도 수익을 실현한 사람들이 다시 투기에 참가하고, 또 금융자금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면 거품이 완전히 꺼지지 않고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부채 구조조정에 나설 때 거품 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가계부채 급증세를 사실상 방치했다. 특히 2014년의 주택대출 규제 완화는 마스크마저 벗겨 투기 감염률을 크게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초저금리는, 부동산 보유 비용이 낮은 현실에서 부동산의 상대적 매력을 높여 투기에 대한 면역력을 약화시켰다. 넘치는 시중 자금은 투기의 자양분이 돼버렸다.

그러나 경제가 거품 위에서 영원히 성장할 수는 없다. 부동산 거품은 금융 부문을 취약하게 할 뿐 아니라 경제의 보상 체계를 왜곡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많은 젊은이들이 혁신보다 투기 공부에 몰두한다. 부풀어 오른 집값은 결혼과 출산을 어렵게 해 사회의 토대를 갉아먹는다.

지금 정부는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투기를 진정시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경기 남부로 거품이 번지고 있다. 대출 규제의 빈틈을 신속히 메우면서 임대주택을 늘려 대피처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투기에 취약한 제도를 개혁해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아도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줌으로써 사람들이 투기 스토리에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부동산 투기#사회적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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