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을 건너려면 전부를 걸어라[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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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삶도 안갯속 더듬는 시대… 연약한 우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성취는 노력에 정비례 안 해… 정체와 인내 쌓여야 큰 도약
절실히 원하면 모든 걸 걸어야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나도 ‘동백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오랜만에 시청률 20%를 넘기며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야기다. 뒤늦게 후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보기 시작했는데 한 번 보자 도저히 다음 회를 보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결국 꼬박 이틀을 바쳐 다 보고야 말았다.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있다.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 동백이(공효진 분) 앞에 뒤늦게 아이 아빠가 나타난다. 돈 많은 프로야구 선수인 그는 자신이 키우겠다며 아이를 데려간다. 하지만 숨겨 놓은 아들이 있다는 게 밝혀질까 두려운 그는 아들더러 ‘조카’라 한다. 그러자 동백이 일갈한다. 아이 인생에 집적대지 말라고, 아빠 노릇을 하려면 네 것을 다 걸라고. 당연히 아이는 동백이가 키우게 되고 아이에게 아빠의 몫은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지금껏 통해 왔던 것들이 더는 통하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짙은 안갯속을 더듬더듬 가야 할 판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국가 경제나 정치 혹은 기업의 미래같이 큰 것들에 얘기되곤 하지만 개인의 인생에도 불확실성은 자주 찾아온다. 아니 어쩌면 인생 자체가 불확실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한 가지를 빼고는.

불확실성을 어떻게 극복할까. 더구나 환경을 통제할 힘이 없는 개인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넘어설까. 내겐 오래전부터의 관심사요 질문이다. 그런데 질문이라는 게 흥미로운 데가 있어서 마음속에 질문을 품고 있으면 발효가 시작된다. 마치 콩이 발효되어 된장이 되고 청국장이 되는 것처럼 질문을 품은 자리에 뭔가가 꾸물꾸물 생겨난다. 나는 그것을 ‘인사이트’라고 부르겠다.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안쪽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다. 오랜 질문 끝에 이런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불확실성의 그래프’다.

자, 간단한 그래프 하나를 그려 보자. 가로축을 노력, 세로축을 성취라 하자. 만약 노력하는 대로 성과가 나온다면 그래프는 우상향 45도 형태가 될 거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계단식에 가깝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를 한다 치자. 결심을 하고 몇 날 며칠을 열심히 한다. 일주일 공부하면 일주일만큼 영어가 들리고 2주일이 지나면 또 그만큼 진도가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채 시간만 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면 이걸 계속해야 되나,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포기하기 시작한다. 다시 굳은 마음을 먹고 계속한다 치자. 어느 날 귀가 열린다. 영어가 막 들리기 시작하는 거다. 아, 이제 됐구나 하며 마음을 놓는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지나면 또 제자리 같다. 다시 모르겠는 거다. 이 단계에서 또 적잖은 이들이 포기한다. 남은 이들이 점점 줄어든다. 결국 성취는 불확실성의 구간을 통과해야 가능하고 그래서 그래프는 계단식이 된다.

그럼 왜 성취 그래프는 이런 식일까. 왜 노력하는 대로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지 않고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걸까. 나는 실없이 이런 생각을 해본다. 단단한 소수를 골라내는 우주의 테스트가 아닌가 하고. 정말로 그 일이 하고 싶은지, 절실하게 원하는지를 걸러 내려는 이치가 아닐까 하는. 만약 바로바로 성취를 실감할 수 있다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 그런데 인간사 대부분은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이 불확실성이 사람을 잡는다. 주식 시장도 드러난 악재보다 불확실성이 더 나쁘다고 하지 않는가.

벌써부터 내년도 전망이 나오고 내년 역시 만만치 않은 해가 될 거라고 한다. 그럼에도 성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는 말이다. 될지 안 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힘으로 그렇게 하는 걸까. 동백이 말처럼 전부를 거는 거다. 여차하면 발을 빼려는 태세로 한 발만 담그는 게 아니라 두 발을 다 담그고 전력을 다하는 거다.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상식인 세상에 이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인가 싶겠으나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들이다. 절실하게 원하는 것에 전부를 걸라고. 불확실성의 안개는 그 힘이 걷어준다고.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동백꽃 필 무렵#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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