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 왜 괴로움이 먼저일까?[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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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 투정부리던 어린 손흥민에 ‘성공은 선불’이라는 아버지의 일갈
하고싶은 일 하며 살기위해서는 큰 어려움 감당하고 이겨낼 각오와
작은 것부터 시작할 용기 필요해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다음 주면 책방을 시작한 지 만 3년이 된다. 책방을 하겠다고, 그것도 임대료 비싼 강남에 내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죄다 반대했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책방은 될 일이 아니며, 더 이상 젊은 나이가 아니므로 실패해도 만회할 시간이 없다는 등 반대의 이유는 많고 타당했다.

그런데 귀 얇은 내가 그런 충고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미리 걱정하는 편인 내가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랬을까? 아니면 둘이 같이 하는 동업이라 두려움이 절반으로 줄어서 그랬을까? 어쨌든 우리의 1차 목표는 일단 3년을 견디고 살아남는 거였다. 그런데 정말로 무사히 3년을 맞았다. 자영업자 3년! 1차 목표 달성이다.

우리는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카페나 할까 보다’ ‘농사나 지을까 보다’. 세상일은 직접 해보면 쉬운 것보다는 어려운 게 많다. 카페나 한번 해 보시라. 농사나 한번 지어 보시라. 전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농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책방도 비슷한 데가 있다.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 동네 책방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이유가 뭘까? 디지털에선 느끼기 어려운 맛과 경험을 찾는 게 아닐까? 그 얘기는 주인 입장에서 보면 책방이란 마치 가내수공업처럼 전부 사람 손이 가야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뿐인가. 임대료며 직원 월급이며 신경 쓸 일은 차고 넘친다.

책방을 시작하고 1년쯤 되었을 무렵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내가 책방을 왜 했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서 보고,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좋은 카페에 가 느긋하게 마시면 될 것을 어쩌자고 책방을 열었을까?’ 유독 힘들다고 느꼈던 날이다.

오래전에 봤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대사가 떠올랐다.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이 지옥이기에 그나마 세상이 평온한 것이다!” 극중 세종대왕의 대사였다. 이런 근사한 대사를 듣고 있자면 드라마 작가가 돼 보고 싶어진다. 작가의 인사이트가 대단하다 싶었다. 수년이 흘러 책방 주인이 되고 나서 마음이 유독 힘들던 날 이 대사가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지, 책방을 누리는 것은 손님의 몫이지, 주인의 몫이 아니지. 주인은 그분들이 누릴 수 있도록 애쓰는 거지!’

역시 좋은 콘텐츠는 오래도록 영감을 준다. 한 사람의 자영업자에 불과한 내가 감히 세종대왕을 운운한 것은 이치를 말하기 위함이다.

후배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책방을 낸 내 모습이 그렇게 하고픈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감당하라! 좋아하는 걸 하려면 어려움이 닥쳐도 감당해야 한다.

한자 숙어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있다. 다 아는 대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뜻이다. 나의 시선은 ‘순서’에 가 닿는다. 왜 ‘감(甘)’이 먼저가 아니고 ‘고(苦)’가 먼저지? 그러곤 곧 알아차렸다. 이 또한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그러니까 선행 투자인 거다. 열매를 얻고 싶으면 먼저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이치. 그런 후에야 꽃을 보고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이치.

아, 하나 예외가 있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는 일만큼은 순서가 반대다. 그것은 먼저 맛본 연애의 달콤함을 결혼으로 오래도록 감당하는 일이다. 만약 사랑과 결혼이 고진감래의 순서를 따라 결혼이 먼저였다면 오늘날 세계 인구는 훨씬 적을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손흥민 선수의 책을 읽었다.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그가 생각한 것은 축구가 너무나 재미있다는 것과 정말 축구를 잘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이기고 싶다는 것이 전부다. 명확하고 심플하다. 그런데 이 책엔 앞의 세종대왕 대사만큼이나 강렬한 통찰을 담은 문장이 나온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얘기다. 어린 손흥민 선수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면 그의 아버지는 “성공은 선불이다!” 하고 일갈했다. 열매를 얻고 싶으면 먼저 무언가를 하라는 거다.

꼭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다. 당신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씨앗을 심고 있는가?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고진감래#최인아책방#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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